달의 영휴
사토 쇼고 작가님의 장편소설 '달의 영휴'입니다.
예전에 제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에서 댓글로 어떤 분이 이 책을 추천해주셔서
읽게 된 책입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선 표지가 참 이쁘네요. ^^
나오키상 수상작... 멋집니다. ^^
오사나이는 고등학교 후배인 후지미야 고즈에와 한 번도 말을 섞은 적이 없는, 얼굴도 몰랐고 이름도 들은 적이 없었는데..
그녀를 대학에 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서클 활동에서 만나게 되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둘 사이에 루리라는 딸이 태어나죠.
딸이 일곱살에 원인 모를 발열이 시작된 후
일주일이 지나서 열병은 말끔히 사라졌지만, 아내인 고즈에는 남편인 오사나이에게 딸이 이상하다는 말을 하며
딸이 어른스러워진것 같고 곰인형에게 아키라 군이라고 하며 대화를 한다는 걱정을 하지만
오사나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1년 후,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딸은 아내 고즈에와 함께 교통사고로 즉사하게 됩니다.
이 책의 여주인공인 유부녀인 루리는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듯이 자신이 사랑하는 미스미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는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겨 뒤에 자손을 남기는 방법과 또 하나는 달처럼 죽었다가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며,
자신은 달처럼 죽어서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미스미 앞에 몇 번이고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 후 불의의 사고로 죽습니다.
이후 그녀는 오사나이의 딸인 루리로 태어나고 사고로 죽은 후 또 다시 일곱 살의 모습으로 태어나
사랑하는 미스미인 아키라 군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이 후 사고로 또 죽고, 또 일곱살의 모습으로 아버지인 오사나이 앞에 딸과 아내가 죽은 지 15년이 지난 후에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한다는 게 나쁜 건 아니야. 어른이 되어 가면서 누구나 경험하는 거겠지.
사려 깊은 눈? 괜찮지 않아?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사려 깊은 눈으로 여러 가지 것을 보고 그때마다
배우면서 단계를 밟아 어른이 되어 가는 거잖아? 오늘 갑자기라고 당신이 느낀 것은 최초의 한 계단이기 때문이야.
어른이 되는 전조가 한순간 나타난 것 같은 거야. 실제로는 앞으로 서서히 한 단계 한 단계 루리는 성장해 갈 거야.
당신도 나도 어렸을 때 그랬듯이." [p.37]
그때 거기에 미스미가 오랫동안 말없이 멈춰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슨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몸을 스치고 빠져나간다기보다, 아침 햇살의 따사로움을
실어서 미스미에게 휘감겨 들어와 옷 안쪽의 피부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았다. 미스미는 그대로 몇 시간이라도
거기 서서 루리 씨와 얼굴을 마주 보며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을 수 있겠다는 기분이었다.
[p.163]
"보통 사람은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 어쩌면 다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그것이 죽음일지도 몰라."
[p.179]
그때까지의 그의 인생이 작은 파도조차 뒤집어쓴 적 없는 고요하게 이를 데 없는 바다 같은 것이었다면,
이제 그는 두 번의 폭풍을 만나 난파한 배나 다름없었다. 선배의 자살까지는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지만
아내의 횡사는 그에게 결정타가 되어 항해 불능한 상태로까지 상처를 입혔다. 인간 세상의 덧없음, 무상함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통절히 느꼈다.
간단히 말해 모든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p.243]
"미술실에서 주고받은 약속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만에 하나 자신이 생명을 잃으면 자신은 한 번 더 다시 태어날 거다. 달처럼.
한 번 이지러진 달이 또다시 차오르듯이. 그리고 너에게 사인을 보낼 거다. 그 사인을 알아차리면 환생을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받아들이겠다고 나는 약속했습니다. 그때는 아마 둘 다 그런 일은 만에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약속한 걸 겁니다." [p.345]
어려움은 내 힘으로 떨쳐 내야 해. 불운했던 과거의 그녀들을 위해서라도, 아니, 불운했던 과거의 우리들을 위해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야. 이건 나 한 사람만의 바람이 아니라 그녀들, 불행했던 사자의 바람이기도 한 거야.
어쩌면 그녀들에 머물지 않고 더 먼 옛날부터 수많은 사자들로부터 바통이 건네진 숙제일지도 몰라. 이것은
모두의 사랑을 이루는 날까지 영원히 계속될지도 몰라.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난 채 이 세계에서 사라져 갔을지도 몰라.
[p.392]
기억해요?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지요.
당신은 수건 대신 티셔츠를 내줬지요. 내가 보답으로 선물한 티셔츠, 당신이 하치노헤의 누나한테
보내 달라고 해서 받은 이치고니 통조림, 기억해요? 둘이서 영화를 봤지요. 둘이서 이야기하면서 걸었지요.
하염없이 둘이서 걸었지요.
결국 준비한 말을 하나도 할 수 없었다.
숨 막힐 것 같아 목이 메어 말을 잃은 소녀를 향해 그는 웃는 얼굴로 끄덕여 보였다. 그 웃는 얼굴이 됐어,
아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으니까, 라고 격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루리 씨, 라고 조용히 부르는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렸다.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하고 그는 말했다.
[p.396]
두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는 작가님의 이야기가 이해되더라구요.
한 번 읽으면..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어서...ㅜㅠ;;
비록 불손한 소재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날 거라는 그 이야기가 가슴이 아픕니다.
왠지 좀 무섭기도 하지만...;;
소설로도 매력적이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으로 그려질지 궁금해지는 작품입니다.
신비하고 흥미로운 소설 '달의 영휴'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