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여자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하얀 종이 2018. 7. 17. 14:49




허혁 작가님의 수필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입니다.



인터넷서점을 서성이다 발견한, 어린 시절 교과서 같은 비주얼의 책이 눈에 들어왔어요. ^^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모는 기사분이시고,


누구보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시는 낭만파 작가님. ^^


비록 문학의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각종 문확상을 휩쓴 화려한 경력의 작가는 아니지만


때론 삶을 피부로 고스란히 느끼고 사는 이런 분의 글이


오히려 더 마음깊이 스며듭니다.



웃다가, 눈물을 삼키다가..


쇼(?!)를 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 




















삶의 목적이 인격 성숙이라면 전주 시내버스만 한 대학도 드물 것이다.

하루 열여덟 시간의 악마적인 노동은 항상 나를 깨어 있게 한다.

그 어떤 곳에도 환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p.20]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그래."

운전을 생업으로 하면 사고를 피할 수 없다.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닐 때 우리는 기도를 한다.

오늘도 무사히는 운전기사들의 겸허한 신앙고백이다. 나와 내 가족 먹고사는 일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문이다.  [p.49]















 

 

 

산다는 건 리듬을 타는 일이다. 그 리듬으로 한 사회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고 본다.

저상버스가 휠체어 탄 승객을 싣기 위해 리프트를 펴는 잠시 동안에도 '빵빵'거리며 도로가 난리가 난다. 버스만

바꿔서 될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속도가 지금보다 확실히 낮아져야 한다. 빨리 가봐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공유했으면 좋겠다.

 [p.79]

 

 











 

 

 

우리는 알게 모르게 늘 예측하며 산다. 서구의 실존이 기도 대신 선택한 기능도 예측이다.

닥쳐올 불행을 예측해냄으로써 극복하고자 했다. 시내버스 일의 핵심도 예측이다. 안전운행은 두말할 필요 없이

예측운전이 기본이며 친절기사의 선행조건도 예측이다. 예측한 범위 안에서는 모두 참고 피해갈 수 있다. 상대방이

예측을 벗어날 때 화가 나는 법이다.  [p.114]

 

 

 

 













삶이 언제나 그렇듯 내가 운행하는 버스만 유독 소란스럽다.

소음이 제거된 옆 버스는 마치 순정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라디오에서 멋진 음악이라도

흘러나오고 있으면 옆 버스의 풍경은 한편의 시가 되기도 한다.

[p.179]

 

 

 














시내버스는 하루종일 "끽끽" 브레이크 밟는 것이 일이다. 관광버스는 달리기 위해서 서고

시내버스는 서기 위해서 달린다. 당신 몸이 앞으로 안 쏠리면 시내버스가 아니다.  [p.185]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버스를 찍으러 다니면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기사가 승객이 되고 그 승객이 다음날 기사가 되면

운전의 품질이 향상된다. 낯선 곳에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 여행이라면 멀리 안 가고 여행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카메라를 들고 나서면 나를 포함한 사물의 일상이 충분히 낯설어진다. 흐르는 시간을 정지화면으로 보는 재미가 크다.

[p.219]



















늘 그렇듯 저는 승객 입장으로만 버스를 바라봤습니다.


기사들 표정과 말투는 왜 저렇게 퉁명스러울까.. 좀 친절하면 안되나 하고.


그런데 하루 열여덟 시간을 버스를 몰면서 일하신다니... 그런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저는 휠체어 생활을 오래 해서 시내버스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릴 적엔 자주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곤 했어요.


엄마랑 같이 간 백화점이나 시장 혹은 이모네.


친구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우리 동네엔 없었던 큰 선물가게가 있는 동네.



읽고 있으면 버스 한 귀퉁이 의자에 앉아


창틈새로 불어오는 꽃바람을 맞는 기분이 드는 책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오랜만에 그립고 행복한 기분 느끼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