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여자

82년생 김지영

하얀 종이 2019. 11. 20. 16:28

 

 

 

 

조남주 작가님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입니다.

 

 

이미 유명한 작품이고,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이죠.

 

이 작품이 2016년에 나왔는데,

 

베스트셀러는 왠만해선 잘 읽지 않으려는 저의 습관 탓에

 

여태껏 읽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구입해 읽었습니다.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의 김지영 씨는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입니다.

 

시댁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집안일을  하던 지영은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고,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놀라게 만들기도 하죠.

 

아내의 건강을 염려한 남편이 그녀의 정신과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은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치사해서 안 먹어. 절대 안 먹어."

김지영 씨는 치사하다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몰랐지만 언니의 기분은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혼내는 게 단순히 김지영 씨가 더 이상 분유 먹을 나이가 아니라거나

동생 먹을 게 부족해진다거나 하는 이유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억양과 눈빛, 고개의 각도와

어깨의 높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까지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표현하자면, '감히' 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하는 느낌이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도

못한 존재인 듯했다. 언니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p.25]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 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저 숙제 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 듯이. 

[p.46]

 

 

 

 

 

 

 

 

 

 

 

 

 

 

 

김지영 씨는 그날 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혼났다. 왜 그렇게 멀리 학원을 다니느냐,

왜 아무하고나 말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p.68]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 가는 것 같아서 태워 준 거야."

태워 준다고? 김지영 씨는 순간 택시비를 안 받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가

뒤늦게야 제대로 이해했다.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p.100]

 

 

 

 

 

 

 

 

 

 

 

 

 

 

"넌 그냥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

이제껏 더 심한 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김지영 씨는 갑자기 견딜 수가 없어졌다.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아 숟가락을 세워 들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딱, 하고 단단한 돌덩이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숟가락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당신은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그런 고리타분한 소릴 하고 있어? 지영아, 너 얌전히 있지 마! 나대! 막 나대! 알았지?"

[p.105]

 

 

 

 

 

 

 

 

 

 

 

 

 

 

 

김지영 씨의 어머니는 대뜸 다음에 아들 낳으면 되지, 했고, 정대현 씨의

어머니는 괜찮다, 라고 했다. 그 말들은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p.141]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p.165]

 

 

 

 

 

 

 

 

 

 

 

 

 

 

 

 

 

 

 

 

길을 지나다 한번쯤 스쳐지나갔을 수도 있는

 

평범한 한국 여자 '김지영'의 이야기.

 

 

저도 80년대생 여자인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딸은 키워봐야 남의 집 식구라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험한 일의 피해자가 되면 조신하지 못한 여자 책임도 크다고,

 

회사에서 커피 타는 일은 여직원이 하는 거고,

 

여자는 출산 육아 탓에 일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들...

 

 

소설 속 김지영이 아프게 된 원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 특히, 자녀를 키운는 워킹맘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먹먹.. 감동.. 눈물...ㅠㅠ

 

 

 

 

저는 영화를 보고나서 소설을 읽었는데,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게 순서인 것 같네요. *^^*

 

 

섬세한 묘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함께

 

시대상을 잘 반영한 소설 '82년생 김지영'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