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우다영 작가님 소설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입니다.
책 소개하는 유튜브 보다가 영업 당한 책. ^^*
우다영 작가님 책은 처음이어서, 설렘 반 두려움 반 심정으로 책을 펼쳤어요.
사이비종교 시설에서 보낸 아이들이 기억하는 유년기 ‘당신이 있던 풍경과 잠들지 않는 거인’
아무 연관이 없는 사고와 불륜을 연관지어
삶을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쌍둥이 아라와 아성의 이야기 ‘해변 미로’
이국의 호텔에서 만난 한 여인 ‘밤의 잠영’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성공한 ‘나’와 실패한 친구의 이야기 ‘창모’
‘해변 미로’와 연결되는 이야기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죠’
약속에 늦은 여자에게 남자가 들려주는
옆 테이블의 커플 이야기 ‘밤은 빛나는 하나의 돌’
여행 중이라던 사촌동생의 죽음 ‘메조와 근사’
모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너는 평생 아무도 사랑하지 못할 거야."
은령은 역시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 때문에 도리어 내가 상처를 받았다.
은령은 실패한 실험의 결과를 보는 듯한 무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은령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자 은령은 천천히 일어나 미술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당신이 있던 풍경과 잠들지 않는 거인' p.33]
"그 이야기는 내 인생과 전혀 무관한 이야기지만 어쩐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점이요?"
내가 물었다.
"삶이 항상 죽음의 연습이라는 점에서요. 꿈이 삶의 연습이듯이요."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p.78]
"구멍 안이 너무 넓어서 나는 점차 어디가 위이고 아래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게 되었어.
단지 내가 어디론가 계속 흘러가고 있다는 것만 자각할 수 있는 거대한 우주 같았어. 꿈에서
깼을 때 나는 내가 그 바다이며 밤이며 동시에 우주인 어두운 구멍 속을
아주 오랜 시간, 어쩌면 하나의 기나긴 생애 동안 헤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 후로
수도 없이 노력해봤지만 다시는 물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지."
['해변 미로' p.100]
"너는 실패자가 아니야. 그 나름대로 충분히 가치 있는 선택들을 해왔을 거고
그것들 모두 너의 일부란다. 너는 아주 반짝반짝하지. 그걸 네가 모르고 살아간다는 건 슬픈 일이야."
그녀는 손으로 아성의 돌아누운 등을 한 번 쓸어내렸다. "그래도 지나간 실패와 위태로웠던 순간들을
기억하렴. 광대한 경우의 수가 있었다는 자각은 언제나 우리에게 삶에 대한 경외감을 준단다."
['밤의 잠영' p.139]
그때로 돌아간다면 현도에게 함께 추운 거리를 걸었던 밤, 하지 못했던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창모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나는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지금 창모로부터
어디쯤에 서있을지는 결정할 수 있다고.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것이
누군가를 해치는 일이 되지 않도록 신중히 고민하겠다고 말하고 싶다.
['창모' p.185]
"어떤 일이 일어난 후에 좋은 일이 생길지 나쁜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몰라. 그냥 세상은
어떤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우리는 받아들이지. 하지만 억울해할 필요는 없어. 그것들은 우릴
해치거나 무너뜨리려고 밖에서 찾아오는 침략자가 아니야. 모든 일은 지나가고 나면
우리 안에 남아 우리의 일부가 될 테니까. 사라지는 건 결코 우리가 아니니까."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죠' p.219]
나는 잠에서 깨어나 이 모든 것이 호숫가에 누워 낮잠을 자는 동안 꾼 꿈이었다는 걸 깨달았어.
나에게는 그런 아름다운 인생이 없었고, 단지 오래전에 생긴 깊은 흉터가 손바닥 위에
남아 있다는 걸 천천히 기억해냈어. 그리고 잠이 들기 전에 하고 있던 생각을 다시 떠올린 거야. 내가 늘
시작도 끝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 흉터를 남긴 사람이 나의 일부가 된 것처럼,
내가 언젠가는 누군가의 일부로 남는 일처럼 말이야.
['메조와 근사' p.272]
뭔가 어렵고 쉽게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무척 매력적인 단편소설들.
저는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과 ‘해변 미로’를 재밌게 읽었어요.
처음엔 짙은 보라색 표지가 다소 섬뜩했는데,
책을 읽고나니 왜 이런 디자인이 표지인지 알겠더라구요.
사람은 살다보면 종종 이상하고 기묘한 일을 겪게 되죠.
자기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 믿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예측불가능하고 힘든 문제를 던져줍니다.
돌이킬 수 없는 유년기, 시기가 뒤틀려 만난 인연, 가까운 이의 죽음, 우연히 만난 이상한 사람...
읽다보니, 집과 아주 먼 바다 근처 호텔에 멍하니 머무르고 있는 붕 뜬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현실인지 잠시 몽롱해지는 기분...//
작품도 좋았고, 문장이 참 아름다운 소설들이었어요.
우다영 작가님의 소설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