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축제자랑
김혼비 작가님, 박태하 작가님의 수필 ‘전국축제자랑’입니다.
민음사 유튜브 채널에서 보고 산 책이에요.
표지만 봐도 장수 TV프로 ‘전국노래자랑’의 흥겨운 시그널 음악이 울려퍼질 것 같은 이 책은,
부부인 두 작가님이 영암왕인문화축제, 의병대전, 강릉단오제, 젓가락페스티벌, 양양연어축제 등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겪은 축제 체험기를 엮은 수필이에요.
민음사 문학잡지 ‘릿터’의 연재 에세이를 엮은 책이죠.
오랜만에 웃음을 빵빵 터뜨리면서 읽은, 무척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0^
자, 이제 축제장으로 떠나 보자. 각자의 자리에서 코로나의 시간을
묵묵히 이겨 내고 있는 여러분들이 잠시나마 힘겹게 일상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잃었던 것들을 떠올려보게 되는 기회가 되기를. 그리고 조만간 잃었던 많은 것들이 돌아오고
일상이 돌아오고 축제가 돌아와서 서로가 서로의 축제 속에서 함께 즐거울 수 있기를.
그날까지 모두 무탈하고 안녕하기를.
[p.12]
그래, 사실은 알고 있었다. 때로는 어설프고, 키치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 혼잡한 열정 속에 숨어 있는 어떤 마음 같은 것을 우리는 결코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그마저도 넓고 촌스러워진 '진정성'이라는 한 단어로 일축해 버리기에는 어떤 진심들이
우리 마음을 계속 건드린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도 남들 못지않게 거기에 절망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또 때로는 비웃는 'K스러움'도 결국은 그 마음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p.29]
유난히 싫은 것과 좋은 것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축제였고 덩달아 감정 기복도
극명했던 탓에 지쳤던 듯하다. 그런 상태로 장터에 앉아 맛있는 술을 나눠 마시고 있자니 어쩐지
"용서와 위로가 사랑으로 넘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되어 마음속에 여전히 걸려 있던
'어쩌라고'와 '어쩌려고'와 '어쩌자고' 들도 술과 함께 어쩔시구 자알, 넘어갔다. 어쩌면 이게
아리랑의 정신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토로이면서도 연가이면서도 흥이면서도 체념이기도 한.
[p.111]
두 번째, 세 번째 곡이 끝나도록 호응이 전무한 무표정한 노인들을 상대로 신나게 공연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면민 품바들은 포기하지 않고 소주병을 짤랑짤랑, 온몸을 들썩들썩 흔들며 율동의 강도를 높여 갔고,
비로소 어르신들의 표정에도 하나둘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고무된 율동 팀은
온갖 레퍼토리를 아낌없이 쏟아 냈고, 미소가 웃음으로 바뀐 어르신들 사이에서 옅은 박수들이 흘러나왔다.
공연을 펼치는 사람들도, 그걸 보는 사람도 서로가 서로의 반응에 점점 더 즐거워지느라
한두 곡 하고 말겠지 싶었던 공연이 꽤나 길어졌다. 우리가 이 축제에서 본 수많은 공연 중
가장 진심 넘치는 공연이 바로 여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합의된 흥을 서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우러나오는 흥을 주고받는 풍경.
[p.130]
그렇게 우리는 말 그대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었다. 난데없는 호사에 좀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단오굿의
이 작은 위트인 따끈한 백설기는 유독 맛있었고, 공중을 오르다 잡아먹힐지라도 끊이지 않고 소지를
날아오르게 하는 많은 소망들이 애틋했고, 그 소망들을
대신 빌어 주는 마음이 어쩐지 든든했다. 모든 게 정말 '굿'이었다.
[p.157]
그리고 오늘부터 김혼비는 연어에 관해 결코 잊지 못할 순간으로
비닐봉지 안에 담긴 연어가 미친 듯이 펄떡여 그 튼튼한 봉지를 찢고 나와 물속으로 다시
뛰어드는 장면을 꼽을 것이다. 세상에. 양손으로 잡아 뜯기도 힘든 저 비닐을 결국 뚫어 내다니.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 절박함에. 그리고 죽음 직전의 고비를 남기고 저렇게 악착같이
헤엄쳐 가도 여전히 수많은 맨손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에.
[p.216]
우리가 지역 축제를 쫓아 나선 마음 깊은 곳의 동력은 결국 '맞아. 세상에는 ○○이란 게 있었지.'와
'그치, 그걸로 ○○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의 합주와 변주였다. 몰라도 일상생활에 하등 지장 없고
그래서 알 필요 없는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해 두고 싶어서였다.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사그라지고 있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성실히 지켜 나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세계에서는 여전히 절실하고
또 많은 이들의 생계나 자부심을 떠받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p.280]
작가님 두분 다 주변머리 없는 성격이라 하셨는데 그것을 애써 감추고
외향적인 사람인 척 뻘줌하게 축제장을 기웃거리는 풍경이
책 읽는동안 고스란히 떠올라 너무 재미있었어요.
지역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역사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이어나가려는 마음도 감동이었습니다.
기존의 잘못된 방법이 아닌
올바르고 신나게 축제를 즐기는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이야기도 너무 좋았어요.
축제, 저도 무척 좋아해요.
북적이고 정신없지만,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신나고 흥겨운 축제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코로나 탓에, 지친 일상 탓에
그 축제를 즐기던 때가 언제였는지 가만히 떠올려보게 되고,
그렇게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그 시절이, 꼭 다시 돌아오길 빕니다.
김혼비 작가님, 박태하 작태하 작가님의 수필 ‘전국축제자랑’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