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빕니다
김이환 작가님의 연작소설 ‘행운을 빕니다’입니다.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에요.
이 소설은 낯선 사람에게 정체모를 흰 상자를 받게 되면서 시작되는 사건들의 이야기입니다.
같은 상자를 받게 된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죠.
똑같은 흰 상자를 받아들었지만 누가 받게 되었는지, 어떤 소원을 갖고 있었는지에 따라 이야기들이 주는 느낌도
무척 달랐습니다.
주인공들이 받게 되는 흰 상자의 한쪽 면에는 작은 글씨로 ‘OPEN’이라고 쓰여있어요.
상자를 건네 준 검은 양복의 남자는 “사람은 누구나 소원을 가지고 있죠, 그렇죠?” 라는 묘한 질문과 함께
이 상자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 말합니다.
대신에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한 뒤, “행운을 빕니다.”라는 말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 버리죠.
그리고 상자를 받아 든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빌었던 소원들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면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릅니다.
이상하고 기묘하며 조금은 무서운 분위기의 소설,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하는 부산한 상황 속에서, 남자가 말했다.
"상자가 최상원 씨의 소원을 들어줄 겁니다. 그 대신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남자는 던지듯 그에게 상자를 건넸다.
"행운을 빕니다."
상대를 받아 들고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남자가 훌쩍 내리는 바람에, 그는 더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p.13]
상자는 귀걸이를 가져갔었다. 상자가 귀걸이를 원하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귀걸이를 주면 아이를 다시 돌려주지
않을까? 그가 떨리는 손으로 상자 뚜껑을 열고 귀걸이를 안에 넣으려는 순간, 상자 안쪽 깊은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릴 듯 말 듯했다. 무슨 소리지? 귀에 상자를 가져다
댔다가, 남자는 흠칫 놀라 귀걸이와 상자를 떨어뜨렸다. 귀걸이도 상자도 그의 발치에 뒹굴었다.
상자 안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p.46]
"너는 아직도 네 소원 기억 안 나?"
그건 오늘 오후 내내 그가 스스로에게 되묻던 질문이었다. 그놈의 기억나지 않는 소원 때문에
이토록 길고 긴 일요일 저녁을 보내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미래를 확인하는 거잖아."
"아니야."
미래의 그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자 당황했다.
"그럼 내 소원이 뭐였는데?"
"내일부터는 정신 차리고 살게 해 달라는 거였잖아."
[p.76]
"여기 산타가 주는 선물이다. 상자가 소원을 들어줄 거다. 앞으로도 착하게 지내야 한다.
그래야 내년에도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지."
꼬마는 산타가 선물 자루에서 꺼낸 상자를 받았다. 꼬마의 작은 손안에서도 별로 커 보이지 않는 작은
흰색 종이 상자인데, 표면에 이상한 광택이 맴돌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종이로 포장한 선물 상자만 보던 꼬마에게는
낯선 광택이었다. 산타는 말했다.
"행운을 빈다, 꼬마야."
[p.109]
"사는 데 낙이 없었어요. 맨날 집에서 집안일하고 교회 나가고 가끔 동네 아줌마랑 이야기하고
텔레비전 보는 게 전부였어요. 장난은 나쁘지만••••••. 장난치면서부터는 정말 사는 게 사는 것 같았어요.
요즘처럼 하루하루가 재밌었던 적이 없어요. 정말 정신병이나 그런 거 아니고 나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심심해서 그랬어요. 제발 한 번만 봐 주세요. 절대로 안 그럴게요."
[p.200]
"우리는 상자를 주운 적극적인 사람이니까 적극적인 사람들끼리 먼저 가 보죠."
혜영 넘버 투도 말했다.
"둘이서 잘 해 봐요."
인사인지 뭔지 모를 말을 남기고는 쌩하니 가버려서, 그렇게 상자를 줍지 않은 사람들만 남았다.
"상자 하나 주웠다고 유세 떨기는."
혜영은 투덜대며 말하더니 성준에게 물었다.
"내가 나 자신을 험담하는 게 이상한 일일까요?"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안 그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성준은 얼른 대답했다.
[p.279]
성공했다. 게임을 따냈다. 남자와의 내기에서 이겼다. 이제 로또 영수증만 받으면 된다. 돈이 생기면 가족도
편하게 살 수 있다. 피 말리는 전화도 오지 않을 거고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당장 의료보험 체납한
돈을 내서 아이와 아내가 병원도 갈 수 있고, 카드 대금도 내서 생필품을 살 수 있다. 아버지나 장인어른에게
생활비 좀 보태 달라고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 긴장이 풀리자 맥이 빠지면서 잠시 현기증이 났다. 한동안 눈앞이
흐려졌다가 잠시 후에야 제대로 보였다.
[p.324]
"멀리 도망가야 해. 당신은 앞으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과거를 되돌리는 거야. 내 뜻대로 하고 싶어.
도망가면 돼. 다른 사람들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했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그게 다른 사람과 나의 차이야."
"행운을 빕니다."
"뭐? 뭐라고?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왜 그렇게 놀라요?"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내의 것이 아니라 뒷좌석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뒷좌석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앉아
그를 보고 있었다.
[p.363]
저는 장르소설을 좋아합니다. 장르소설의 재미는 바로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는 요소가 가득하기 때문이죠.
이 책은 2013년에 ‘오픈’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행운을 빕니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고 해요.
또한, 열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소원을 흰 상자에게 빌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정말 그들의 소원이었을까요.
그것은 모두 ‘소원’의 가면을 쓴 ‘욕망’이지 않았을까요.
꽤 두꺼운 양의 책이었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매력적이었지만, 저는 그중 ‘노인의 상자’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앞으로 소원을 빌기 전에는 그것이 진짜 소원인지, 아니면 욕망인지 그것부터 확인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
김이환 작가님의 연작소설 ‘행운을 빕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