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는 맛
열두 명의 작가님의 에세이 ‘요즘 사는 맛’입니다.
배달의 민족 뉴스레터 '주간 배짱이'에 실린 음식에 대한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이런 흥미로운 뉴스레터가 있었는데...
책이 나오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네요.
김겨울, 김현민, 김혼비, 디에디트, 박서련, 박정민, 손현, 요조, 임진아, 천선란, 최민석, 핫펠트..
글솜씨 좋으신 작가님들이 쓴 다양한 글들이 엮어져 있어서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정소감’으로 만난 김혼비 작가님의 글도 있어서 반가웠어요. ^^*
요거트 볼의 매력적인 점은 재료의 포용성이 높다는 점이다. 집에 있는 과일은 웬만하면 다 잘 어울린다.
채소 칸에 굴러다니는 오래된 사과도, 선물 받은 오렌지도 올릴 수 있고, 냉동실에 처박혀 있는
블루베리와 애플망고도 무리 없이 어울린다. 하루가 다르게 갈색으로 변해가는 바나나는 요거트의
영혼의 단짝이고, 찬장 한 칸을 차지한 오트밀도 요거트와 찰떡궁합이다. 초코 가루나 땅콩버터 가루,
백년초 가루 같은 걸 섞어도 되고 심지어 삶은 고구마도 잘 어울린다. 고소하고 달달한 종류의 식재료라면
무엇이든 넣어도 좋다. 요거트의 고소함과 부드러움은 재료들을 너르게 안아준다.
나는 그런 요거트의 너그러움을 좋아한다.
[p.25]
"아빠는 평냉을 참 좋아하네. 그렇게 맛있어?"
"시원하잖아. 근데, 아빠 사실 평냉 별로 안 좋아해."
아마 아빠는 평냉이 좋았던 게 아니라, 딸이랑 매주 함께하는 그 시간이 좋았던 것이리라. 아직도
평냉을 먹을 때면, 꼬박 세 달 동안 딸을 위해 내색 하나 없이 평냉 투어를 기꺼이 따라 나서준 아빠를
떠올린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아빠에게 카톡을 해야겠다.
"아빠, 이번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함흥냉면 먹으러 갈까?"
[p.87]
"너 있어서 엄마가 이런 것도 먹어본다."
그건 모친이 그때까지 누리지 못했던 모든 맛에 대한 말이어서 아픈 동시에, 모친에게 생긴 (비교적)
젊고 세련된 친구인 나에 대한 신뢰의 표시여서 더 기쁘기도 했다. 좋았어, 엄마는 나만 믿어. 내가 어릴 때
약속한 것처럼 수영장 있는 이층집은 못 사줘도 빙수는 평생 사줄 수 있어. 등단 상금이 입금되기 전이어서
통장에 10만원 남짓밖에 없던 주제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모친과 팔짱을 끼고 집에 돌아왔다.
[p.134]
팬데믹이 일상을 관통하며 식탁 풍경도 빠르게 변했다. 나 역시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배달 음식을 시키고, 가끔
밀키트를 사다가 쟁여놓기도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오믈렛을 단독 메뉴로 내건 식당을 꿈꾼다. "당신이 해주는
오믈렛 기다리다가 내 속이 타겠다. 그 속도로 식당 운영은 어림도 없을걸?" 아내의 말이다. 이를 어쩌나, 오믈렛은
천천히 익히는 시간이 생명인걸. 가끔 현지에서 아무렇게나 장을 보고 오믈렛을 해 먹던 그 시절의 자유가 그립다.
물론 그 자유가 찰나의 허상인 걸 알지만. 예전의 일상이 돌아오려나.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오믈렛을
나눠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자유만 있어도 충분하다.
[p.162]
의외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를테면 작업실에 원두가 다 떨어졌을 때 서랍에서 찾은 드립백
커피 한 봉지, 친구에게 받았던 작은 운, 무척 다정한 복. 운이 좋다기보다 기쁨을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행복은 웬만해선 먼저 노크를 하지 않는다. 내 손으로 문을 열고 나서야 겨우 만나지는 게 바로 행복이다. 말 그대로
다행스러운 복. 별거 아닐지라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을 슬며시 감고 안도하는 마음 말이다.
[p.231]
오늘 이유 없이 꿀꿀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나처럼 고기 앞으로 가는 걸 추천한다. 다이어트 중이 아니라면 더 좋다.
삼겹살도 좋고 꽃등심도 좋고, 치킨이나 양꼬치도 좋겠다. 다이어트 중이어서 나처럼 닭가슴살 앞으로 간다 해도
좋다. 든든히 먹고 힘내다보면 또 좋은 날이 올 테니, 오늘의 우울함에 무너지지 말자.
오늘은 다행히, 날씨가 참 좋다.
[p.305]
요거트, 제철 과일, 평양냉면, 납작만두, 팟타이, 오믈렛, 커피, 와플 등등...
누군가에게는 그저 단순한 음식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지친 영혼을 달래주고,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준 소울푸드.
그렇죠.
'음식'에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버텨온 시간이 있고, 추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충 한 끼를 때우다가도
예전에 먹었던 음식과 그 음식을 함께한 인연과 흐른 시간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 것 같아요.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지쳐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뭐였는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열두 명의 작가님의 음식 에세이 '요즘 사는 맛'
맛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