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정지음 작가님의 에세이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입니다.
정지음 작가님은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에세이를 쓰신 분으로도 유명하죠.
그 책은 사실 못 읽어봤는데,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를 읽고 나니 그 책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은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나 자신, 가족, 친구, 연인, 동료,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무척 공감되고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사랑이든 미움이든, 끓는 감정에는 기다림이 필요한 법이었다. 사랑이었다가 미움으로 둔갑한 마음이라면
더욱 그랬다. 두고 본 후에도 끓고 있다면 그때 온도를 확정해도 늦지 않았다. 그제야 '시간의 힘' 옆에
'빌린다'라는 동사가 따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간은 내 것도 내 편도 아니지만, 언제나 나보다 힘이 셌다.
그리고 너그러웠다. 내가 빌리고자 한다면 이자를 붙이지 않고 여유를 내어줄 것이었다.
[p.31]
빗속에서 깨달은 바는 다시 희망이었다. 비로 말하자면, 창문으로 흘깃거릴 땐 몇 시간 내내 세찬 것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비든 몇십 분의 집중 상태와 몇 분의 소강 상태가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해가 떴다. 그렇다면 비가 내포하는 미래 자체가 햇살이라 봐도 좋을 것이었다. 그런 점이 인간관계와도 닮아 있었다.
어떤 사이 얼마만큼의 갈등이든 잠깐씩 햇살이 비치거나 물살이 희미해지는 순간이 존재했다. 그 사실을 수용하거나
외면하다 보면, 버티거나 보내주다 보면, 시간이 흐른 후 마지막은 어쨌든 맑음이었다.
[p.86]
좋아진 것 하나 없지만 보상이 없어도 생은 이어진다. 우리는 이제 서로가 호언장담한 대로 처신하지 못했다며
창피를 주고받지 않는다. "그만둔다며?", "시작한다며?"라고 추궁하는 일도 없다. 삶을 너무 모르다 보니 모르는 척에만 도가 튼 것일지도. 하지만 우리를 찌르는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니 서로에게만큼은 뭉툭하게 굴어도 괜찮지 싶다.
[p.134]
나는 이미 게으름이란 감옥에 갇힌 몸이라 더는 약간의 범법도 감수할 수가 없다. 내 월요일은 일요일의 쫄병일
뿐이어도 편집자님들에겐 그렇지 않을 것이므로, 무엇이든 계속하여 적는다. '반려 고양이 맷돌이가 나 대신 글을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상상하지만 그 또한 대필이니 시도할 수 없는 요술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런 삶도 있는
것이다. 자유와 방종 사이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삶, 그런 모호함을 유지할 작정으로만 굴러가는 삶도 있는 것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즐거운 나의 집 속에.
[p.174]
집은 작아도 창문과 창문 밖 풍경만큼은 드넓다는 게 우리 둘의 위안이었다. 가끔 날씨가 오늘 같은 이벤트를
벌이는 날, 우리는 조금 더 친밀해졌다. 세찬 폭풍우가 오거나 천둥 번개를 치는 날도 그랬다. 두려운 건지 떨떠름한 건지 헷갈리는 고양이를 껴안고 "내가 너를 지켜줄 거야" 속삭일 때면 나는 이미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이룬 것만
같았다. 어떤 착각은 바로 잡지 않는 게 나았다. 그저 지속함으로써 희망적 싹을 틔우니까.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나는 대가 없는 착각의 수혜를 계속계속 누릴 수 있었다. 길게 썼지만 한마디로 대단히 행복하단 말이다.
[p.237]
이 책 속에서는
작가님이 겪은 답답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했던 노력과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가 예상과 달라 느낀 좌절과 작가님의 일상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정지음 작가님의 솔직한 감정이 담긴 담백한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작가님의 가족, 구남친, 시궁창 컴퍼니 사장님, 작가님과 함께 한 시궁창 컴퍼니 동료들,
예비 거지인 작가와 예비 돌싱과 예비 백수인 친구들...
흔하면서도 특별한 시트콤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몇 번이나 웃음이 새어 나왔어요.
재미있으면서도 사회적 약자와 혐오와 올바른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써져 있어서 무척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작가님이 ADHD 질환을 앓고 있지만
다정한 마음과 넓은 이해력 또한 갖고 계셔서
이렇게 재미있고 따스한 책도 쓰신 것 같아요.
가끔은 미칠 때가 있더라도 나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고 시원하게 풀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정지음 작가님의 솔직담백한 에세이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