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입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챙겨읽는 책이에요.
저는 벌써 이 수상작품집들을 읽은지 7년이 되었네요.
참신하고 개성적인 작품들을 보급가로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시리즈의 큰 장점입니다.
임솔아 작가님의 작품,
오래전 실험동에서 초파리를 돌보는 일을 했던 엄마, 이원영의 삶을 이원영의 딸인 소설가 권지유의
시점에서 그려낸 이야기 ‘초파리 돌보기’
김멜라 작가님의 작품,
‘눈점’과 ‘먹점’이라는 여성 커플이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서로를 위하며 ‘먹고사는 일’을 꾸려나가는
애틋한 모습을 ‘모모’라는 이름의 딜도의 시점으로 풀어낸 이야기 ‘저녁놀’
김병운 작가님의 작품,
게이 소설가인 화자 ‘나’가 인권단체의 독서 모임에서 만나 한때 친밀하게 지내던 무성애자 주호와
그의 애인 인주씨에 대한 이야기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김지연 작가님 작품,
‘공원’이라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린 공공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폭력적인 차별의 공간으로
변하는지를 그린 이야기 ‘공원에서’
김혜진 작가님의 작품,
자기 몫의 주거 공간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계급적 차이와 인간의 잔인성을 그려낸 이야기 ‘미애’
서수진 작가님 작품,
‘호주’ 라는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서로를 향한 어떠한 감정도 사라져버린 젊은 부부의 권태와
파국성을 ‘폐광’이라는 이미지에 빗대어 그려낸 이야기 ‘골드러시’
서이제 작가님의 작품,
새의 개체수가 급증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까치와 닭으로 표상 된 ‘새’와 관련된 사건과 ‘살처분’이라는 끔찍한 살상과
비인간적인 면을 묘사한 이야기 ‘두개골의 안과 밖’
모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자에는 다 잊어 달라고 적혀 있었다. 지유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서 살라고, 별일 없다는 문자 하나만
보내달라고. 지유는 원영에게 전화를 했다. 또 걱정을 사서 하고 있었느냐고 말했다. 긴 산책을 했다고 말했다.
좋은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팝나무와 조팝나무에 대해 말했다. 내년 이맘때쯤에, 이팝나무와 조팝나무의 차이점에
대해 또 이야기 나누자고 말했다.
['초파리 돌보기' p.36]
- 책갈피라고 하자. 앞으로 그거 말할 땐 책갈피라고 해.
멋진 별칭이었다. 도서관과 어울리는 단어이자 나 모모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비밀 언어. 세상의 수많은 책갈피를
떠올려보라. 가벼운 금속이나 나뭇결을 살린 목재로 만들어진 각양각색의 책갈피. 위대한 건축물이나 꽃이 그려진 디자인.
여행지의 기념품으로 사랑받고 소중한 마음을 담아 선물하기에 좋은 반영구적인 소품. 종이와 종이 사이에 끼워져 읽은
부분과 읽어야 할 부분을 가름해주는 지성인의 상징. 얇고 단단하며 심미적이고 유용한 선물,
책갈피-나 모모는 그런 존재였다.
['저녁놀' p.58]
내가 써낸 그 모든 실패들 속에서도 인주씨는 한결같이 나를 보며 말한다.
쓰면 좋겠어요. 우리에 대해 쓰면 좋겠어요.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p.136]
나는 아이가 시키는 대로 토리를 만졌다. 아무 말도 않고 오래오래 토리의 밤톨 같은 뒤통수를, 뜨뜻미지근한 등을
쓰다듬었다. 내가 그러는 내내 토리는 아이의 무릎에 얌전히 앉아 계속 혀를 내빼고 헤헤거렸다. 우리 셋은 그렇게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공원의 좋아했던 벤치였다. 한가한 사람들이 한가하게 걷고 뛰고 달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문득 나는 내가 사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처음에는 너무 뜬금없고 이상한 감정처럼
느껴졌는데 점점 선명해졌다. 뜻대로 된 적은 별로 없지만 나는 사는 게 좋았다. 내가 겪은 모든 모욕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내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는 건 좋다. 살아서 개 같은 것들을
쓰다듬는 것은 특히나 더 좋다.
['공원에서' p.173]
그건 희망의 모습과 비슷했다.
삶에 기대를 품는 것이 번번이 자신을 망친다는 결론에 이른 뒤로 미애는 가능한 한 희망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노력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삶은 언제나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만
했고, 그래서 희망을 부풀리는 능력이 불필요하게 발달한 거라고, 자칫하다간 다시금 눈덩이처럼 커진 희망 아래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수시로 경고하는 것만은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금 희망이라고 할 만한 게 생겨나고 있었다. 아니, 사는 동안 그런 게 절실하지 않은 때가
한 번도 없었다는 걸 미애는 모르지 않았다.
['미애' p.201]
차 안으로 붉은 노을이 흘러들어왔다. 진우는 핸들을 움켜쥔 손등에 내려앉은 붉은 햇빛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서인의
옆얼굴 역시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진우는 주머니에 있는 오팔 반지를 생각했다. 진우는 서인에게 반지를 내밀며
무릎을 꿇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해 서인에게 입을 맞춘 적도 없었다.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서인의 눈을 닮은 아이를 보며 경탄한 적도 없었다. 진우와 서인은 빛나는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빛나는 순간. 진우는 그들이 늘 그것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 절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붉은 햇빛이 차 안에 가득 들어찼다. 진우는 온통 붉기만 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골드러시' p.253]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이렇게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데,
다들 집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데,
여전히 아파트는 계속 지어지고,
집값이 계속 오르고,
거기에 누군가 산다는 게.
['두개골의 안과 밖' p.286]
책에 실린 작품들 모두 재미있고 흥미로웠는데,
저는 그중에서
김지연 작가님 작품 ‘공원에서’와 김혜진 작가님 작품 ‘미애’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어요.
올해의 ‘젊은작가상’ 작품은 실험적이고 참신한 소재의 단편소설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장르도 다양해서 읽는 동안 무척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필력 좋은 신인작가님들이 계셔서 한국문학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좀더 욕심을 내자면, 저도 그 대열에 살짝 끼어들고 싶습니다. ^^*
야무진 필력으로 재미있는 단편소설들을 읽을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저도 멋진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