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종이 2022. 7. 6. 14:18

 

서소 작가님의 장편소설 오염입니다.

 

 

서소 작가님은 전작 에세이 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을 통해 알게 된 분이에요.

 

작가님의 수필도 무척 재밌게 읽었기에, 이번 책도 기대를 안고 첫 장을 펼쳤습니다.

 

 

 

'오염' 1부는 이윤슬이라는 인물의 인생이 그 일로 인해 오염되는 이야기에서

선영, 규남, 성오라는 인물의 인생도 짙은 색으로 물드는 이야기입니다.

 

2부는 그 인물들이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마스크 브로커가 되면서

거대한 범죄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꽤 두꺼운 분량의 장편소설임에도 스토리 전개가 워낙 흥미진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음을 여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다줘.

[p.11]

 

 

 

 

 

 

 

 

 

 

 

 

 

 

 

 

 

다시 깨어났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나는, 이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되어 버렸다는, 확신.
 나는, 파괴, 되었다는 확인.
 친구들과 수런거린다든가, 깔깔 웃는다든가, 어떤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며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거나, 포크댄스를 춘다거나, 시 낭송을 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
 파쇄 당한 영혼, 영혼의 부스러기들을, 훼손된 잔해들을, 하염없이 굽어보다가, 조각을, 맞춰 보지만, 

끈덕지게 맞춰 보지만, 결코, 맞춰지지 않을 것이라는, 완고한 예감.

[p.80]

 

 

 

 

 

 

 

 

 

 

 

 

 

 

 

 

 

규남의 상스러움은 대화와 더불어 식욕도 돋웠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꺽꺽거리며 먹은 기억이다. 우리는 그날 오래도록, 

때로는 소곤소곤하게 때로는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먹고 실컷 떠들었더니 슬그머니 졸음이 왔다. 기분 

나쁘게 의식을 낚아채는 기면이 아니라 몽글거리며 찾아오는 평온한 졸음. 냠냠 입맛을 다시며 그날 하루 있었던 

즐거운 일들을 생각하다가 스르륵 빠져드는 종류의 수면감. 그런 졸음을 느낀 것도 오랜만이었다. 전연 다른 모양으로 

태어났지만 오히려 그래서 아귀가 맞고 돈독한 아이. 규남의 천진한 상스러움이 나를 배고프고 지치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다. 종종 보자, 규남아.

[p.126]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삶을 무력하게 잇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고통에 대해서는 말을 잘 꺼내지 않았다.

어쩐지 다들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으니까. 괜히 그런 걸 소리 내어 말했다가는 그들을 안에서 지탱하고 있는 마음의 버팀목이 무너질 것 같으니까. 세상에는 '그 일'이라든가, '그날의 일'이라든가, 새해 벽두를 쌍욕으로 시작하는 일처럼

다양하고 치명적인 고통이 병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그다지 비밀도 아닌 쉬운 진실을 나는 뒤늦게 합류하여

깨달아 가는 중이었다.

[p.182]

 

 

 

 

 

 

 

 

 

 

 

 

 

 

 

 

 

 

언뜻 보기엔 무서워 보이지만, 이 바람은 하늘로 올려 줄 것이다. 어쩐지 그럴 것 같다. 마침내, 누군가가 몸을 날렸다. 

그가 바람기둥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걸 사람들이 보았다. 하늘에서 몇백만 원을, 몇천만 원을 벌었다는 소식이 내려왔다. 먼저 뛰어오른 이들이 하늘 너머 구름 위에 올라앉아 껄껄껄 신선처럼 웃었다. 언니, 우리도. 우리도 뛰어들어요.

 나도 하늘에 올라 근두운을 타고 싶어요. 제천대성이 반도의 복숭아를 훔쳐 먹듯 우리도 근두운을 타고 

널려 있는 돈들을 훔쳐 먹어요.

[p.245]

 

 

 

 

 

 

 

 

 

 

 

 

 

 

 

 

 

거래가 성공하던 그날, 쪽쪽 곧은 지폐가 빽빽이 묶인 다발을 받아든 그 순간, 무언가가 몸 안쪽에 사락 스며드는 것 

같았다. 해방. 그래, 내 안에 번져 나가는 이 안온한 느낌은 해방감이다. 치료비로부터의 해방. 월세로부터의 예방. '그날' 

이후 낙오된 인생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눅눅한 예감들로부터의 해방. 더 이상 뭐가 몇만 원이고, 뭐는 

몇천 원이고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소하지만 실제적인 편의. 일생의 자질구레한 고난들로부터 해방되려면

 돈이 필요한 것이었다.

[p.281]

 

 

 

 

 

 

 

 

 

 

 

 

 

 

 

 

 

규남은 카페를 나와 천천히 걸었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고 진눈깨비가 흩뿌리는 몹시 추운 날이었지만 규남은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윤슬이 사 준 고가의 구스다운 패딩 때문만은 아니었다. 12억을 생각하니 몸이 뜨거워졌다. '12억'이라는 

단어가 혈류를 타고 온몸 구석구석을 휘저으며 몸을 데웠다. 몹시 느릿한 동작으로 걸음을 잇고 있었지만, 지금 규남의 

눈에 비친 세상은 쾌속이었다. 바람을 타자. 나도 구름 위에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추위에 창백하게

 곱은 손으로 이유 모르게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p.332]

 

 

 

 

 

 

 

 

 

 

 

 

 

 

 

 

어떤 작품을 완성한 도공의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황폐했던 초년의 비극과 분노와 억울함과 하여간 짧고 굵었던 생의 

모든 오욕칠정을 다 태우고, 그 불길을 원천으로 찬란하게 구워진 청자와 재 부스러기를 지긋하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 

뭐, 사실 비유 따위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청자가 남았다는 것이다. 청자를 품고 나니 모든 게 우습게 

느껴진다. 아, 한 가지 더. 5월 재판일 현재 비트코인이 내가 샀을 당시인 한 닢당 1천100만 원보다 두 배가 올랐다고 

들었다. 고로 나의 청자는 이제 8억이 아니라 16억짜리가 되었다.

[p.371]

 

 

 

 

 

 

 

 

 

 

 

 

 

 

 

 

 

 

 

 

소설 속 사건 묘사와 인물의 감정에 대해 워낙 자세하게 쓰여져 있어서 몰입도가 높은 작품이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워서 줄도 길게 서서 기다리고,

누군가에게 부탁해 사재기를 하기도 했죠.

 

그로 인해 누군가는 큰 돈을 벌기도 하구요.

 

 

 

소설 1부에서 말한 오염2부 이후에서 말하는 오염은 과연 같은 의미일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살인과 사기 중 어떤 죄가 더 큰 죄일까, 생각도 듭니다.

 

 

결론은 역시, ‘착하게 살자가 되겠네요. ^^

 

 

 

 

서소 작가님은 회사 생활을 하시면서 이 소설을 쓰셨다고 하시는데요.

 

그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몰입감이 대단한, 멋진 소설이었어요.

 

 

 

서소 작가님의 장편소설 오염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