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토로 마을
우토로 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 정부에 의해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재일조선인 마을의 하나입니다.
정식 주소는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51번지 [ 京都府宇治市伊勢田町51番地 ]’에요.
현재 약 15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 35%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대 초, 일본 정부는 교토부 우지시에 군 비행장과 병설 비행기 공장 건설을 결정하고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 동원했습니다.
1943년경에는 약 13,000명의 조선인과 그 가족들이 우지시의 합숙소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토로 마을의 전신이에요. 1945년 일본이 패전해 비행장 건설이 중단되자 조선인 노동자들은 생계 수단을 잃은 채 방치되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경제적 이유 등으로 조선에 돌아가지 못하고 무허가촌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너무 슬프죠. 패전하면 사람들도 고향으로 보내줘야지... 정말...
우토로 마을은 거의 1980년대 말까지 수도 시설 없이 우물물로 식수를 해결했어요.
1960년대 우토로 마을의 소유권을 가지게 된 회사 닛산차체(日産車体)는 주민들의 토지 점유를 묵인했으나, 불법점유를 이유로 수도 시설 등의 건설을 거부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야 닛산차체와 우토로 주민들이 수도관 부설을 두고 대립했으며, 1987년부터 우토로 일부 세대에 수돗물 공급이 시작되었습니다.
1987년 닛산차체는 우토로 마을의 토지를 제삼자에게 매각했습니다. 이후 우토로 마을의 소유권은 부동산 회사인 서일본식산(西日本殖産)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1989년 서일본식산은 우토로 마을 주민 전원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으며, 교토지방재판소에 토지명도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998년 재판부는 원고승소판정을 내렸고 주민들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퇴거명령 확정판결을 내리면서 퇴거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우토로 마을 주민들의 퇴거가 결정되면서 주거권 확보를 위한 시민단체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어요.
1989년 일본에서 결성된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은 2004년 춘천에서 열린 ‘한-중-일 거주문제 국제회의’에 참석해 우토로 마을의 실상을 알렸습니다.
2005년에는 시민단체들이 모여 ‘우토로국제대책회의’를 결성하고 우토로 토지 매입을 위한 모금운동을 진행했어요.
우토로 마을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서 2007년에는 한국 국회에서 우토로 토지 매입 지원금 30억 원이 의결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재직시절 이야기입니다.
우토로 민간기금재단과 정부 지원금을 관리하는 우토로 재단법인은 각각 2010년과 2011년, 우토로 마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980여 평의 토지를 매입했습니다.
2014년 일본 정부는 ‘우토로 지구 주거환경 개선검토 협의회’를 통해 우토로 마을에 60채의 공영주택과 도로 건설, 상하수도 시설 정비 등 재개발을 통한 환경 정비 사업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무한도전을 보던 저를 눈물범벅으로 만들어버린 '배달의 무도-우토로'편...
할머니 말씀 새겨듣고 바르게 삽시다.
강하고 정직한 한국인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