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소설 ‘상실의 시대’입니다.
나온 지 꽤 된 책인데...
요즘 이 책을 패러디로 한 것도 많이 보이고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읽어볼까 하고 꺼내든 소설입니다. ^^
원제목은 ‘노르웨이의 숲’인데, 한국판으로 번역되어 나왔을 때
제목을 ‘상실의 시대’로 바꾸어서 출간했다고 하죠.
당시, 하루키 작가님이 ‘노르웨이의 숲’ 한국판 제목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을
무척 맘에 안 들어 하셨다던데...^^;
그런데 읽어보면 이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가 돼요.
상실의 시대... 젊은 시절의 그 시간들...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이던 주인공 '나' 그리고 친구 기즈키와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
나오코와 깊이 사랑하는 사이였던 기즈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하게 되고..
‘나’는 나오코와 급속도로 사랑에 빠져 두 사람은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 후 돌연 나오코는 실종되었고,
한참 후 ‘나’는 그녀가 깊은 산속의 정신 요양원 ‘아미료’에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접합니다.
한편.. 나오코와 떨어져 도쿄의 대학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나'에게,
나오코의 내성적인 성격과는 반대인 발랄하고 적극적인 여학생
미도리가 나타나고 그 둘은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죠.
그리고 나오코는 그곳에서 레이코가 항상 잘 돌봐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합니다.
‘나’는 후에 이 소식을 듣게 되죠.
나오코의 곁을 지켜준 레이코의 말로는, 그녀의 장례식은 너무나 쓸쓸했다고 해요.
‘나’는 아미료에 가서 나오코의 흔적을 찾고, 레이코와 밤을 보냅니다.
‘나’는 도쿄로 돌아오면서 공중전화부스에서 미도리에게 전화를 합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너밖에 없다고.
미도리는 그런 ‘나’에게 묻습니다. 지금 어디냐고.
그 순간, ‘나’는 감각을 잃습니다. 지금 여긴 어딘지, 나는 누군지...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기억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멀어져가고,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으면서 글을 쓰고 있으면, 나는 몹시 불안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어쩌면 내가
기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상실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 때문이다.
내 몸 속에 기억의 외딴 곳이라고나 부를만한 어두운 부분이 있어서, 소중한 기억들이 모두 거기에 쌓여서는
부드러운 진창으로 변해 버린 건 아닌가 하고.
[p.24]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이란 게 지극히 하찮은, 혹은 시시한 데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거기서부터가 아니면 시작되지 않는 거지.”
[p.130]
“먹으면서 맛있다는 걸 느끼는 건 좋은 일이에요. 살아있다는 증거 같은 거죠.”
[p.298]
“물론 인생에 대해 공포를 느낄 때가 있어. 그건 당연하잖아. 다만 나는 그런 걸 전제 조건으로
인정할 수는 없어. 자신의 힘을 백 퍼센트 발휘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는 거야. 원하는 건 가지고,
원치 않는 건 받아들이지 않아.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막히면 막힌 곳에서 다시 생각해.
불공평한 사회란, 반대로 생각하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하지.”
[p.314]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멋진 일이고, 그 애정이 진실하다면
누구도 미궁 속에 내동댕이쳐지지는 않아. 자신을 가져.
[p.406]
“자기, 지금 어디 있는 거야?”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엇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화기를 뜬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 것도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p.441]
열세 살 즈음, 어린이문고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제가 ‘상실의 시대’를 읽고 싶다고 하니까
어려운 소설이니 주위에서 좀 더 커서 읽으라고 했던...ㅋㅋㅋ;;
그래서 좀 더 커서 읽었었는데...
솔직히 그때도 내용이 충격적이었어요. ///^^////
‘연애소설’이라고 해야 할 수도,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표현이 강하고 어려운 부분이 많아 커서 읽으라고 그랬던 것 같아요. ^^
재밌는 문장도 많지만, 청춘이 ‘죽음’과 맞닿아 묘사된 부분이 있어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
요즘 우리나라의 우울하고 답답한 상황과도 맞는 것 같습니다.
상실의 시대, 2016년 대한민국.
우울과 상실감은 2016년과 함께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
얼마 전에는 '노르웨이의 숲' 출간 30주년을 기념해서 리미티드 에디션 양장본도 나왔더라구요. ^^
역시... 괜히 밀리언셀러가 되는 게 아니죠.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청춘의 어두운 단면을 풀어낸 소설 ‘상실의 시대’
매력적이고 인상 깊은 소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