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작가님의 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입니다.
한창 대학교 새내기 시절의 재미에 물들어 살 즈음, 만났던 책이에요.
소설에 관심이 많았고, 일본학을 전공하기 시작한 시절이라 일본소설도 무지 많이 읽었던 그때..
그땐 또 독특한 제목의 책을 보면 내용이 뭔지 훑어보지도 않고 일단 덥석 집어 사는
이상한 버릇이 있어, 이책도 그런 제 괴습관 덕분에 읽은 책입니다. ㅋㅋㅋ;;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교토를 배경으로 선배인 '나'는 짝사랑하는 후배의 주변을 1년 동안 서성거립니다.
그러다 막상 마주치면 "우연히 지나는 길이었어" 이런 말이나 하면서 말이죠.
교토의 헌책시장, 대학축제 등 곳곳을 누비는 그들 사이에 개성 넘치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공중부양을 하는 대학생 히구치, 악덕 수집가에게 책을 빼앗아 세상에 돌려보내는 헌책시장의 신,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일 년 동안
팬티를 갈아입지 않은 빤스총반장, 고약한 고리대금업자이자 사랑스러운 술꾼 이백 씨..
불냄비, 최대한 그녀의 눈앞에서 알짱거리기 일명 '최눈알 작전'과 축지법 고타츠...ㅋㅋ
재밌어서 웃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어이없어서 웃게 하는 판타지소설입니다.
이 글은 그녀가 알코올에 잠긴 밤의 여로를 위풍당당 끝까지 걸어간 기록이자 주역은커녕 길가의 돌멩이로
만족해야 했던 나의 쓰디쓴 기록이기도 하다. 독자 제현은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나의 얼간이 짓을 둘 다 숙독 음미하여
안닌 두부의 맛과도 비슷한 인생의 묘미를 만끽하기를. [p.7]
"젊은이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늘 그걸 물으며 살아야 해. 그렇게 살 때 비로소 인생이 의미를 갖게 되지."
[p.26]
"그냥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지."
이백 씨가 그런 말을 한 것 같았습니다. "맛있게 술을 마시면 돼.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이백 씨는 행복한가요?"
"물론."
"그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이백 씨는 빙그레 웃고 작게 한마디 속삭였습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p.81]
애초에 내가 왜 이와 같은 밤의 여로에 나서게 됐는지, 그때의 나는 이미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매우 신나고 배울 게 많은 밤이었기
때문이겠지요. 뭔가를 배웠다는 것은 단지 나의 느낌일 뿐일까요? 그런 건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병아리 똥같이 작은 나는 어쨌든
아름답고 조화로운 인생을 목표로 앞을 향해 걸어갈 것입니다.
차고 맑은 하늘을 뽐내듯 올려보다가 술잔을 주고받을 때 이백 씨가 내게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기분이 유쾌해졌습니다.
그 말이 내 몸을 지켜주는 주문처럼 느껴져 작게 소리내어 말해보았습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p.92]
나는 그 그림책을 뺏어 들고 핥듯이 살폈다. 그리고 히구치 씨에게서 그녀가 그 그림책을 찾아
헌책시장을 헤맸다는 이야기를 들은 찰나, 천재일우의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아, 한 방의 역전 홈런을 날릴 희망을
발견하자마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나의 로맨틱 엔진이여. [p.150]
불굴의 투지로 완전 무의미한 죽음의 심연에서 뜻밖에 되살아난 나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나의 개인사에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양의 아드레날린이 내 뇌를 가득 채웠다. 그녀를 이 가슴에 안고 내 손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어야지.
태어나서 뭔가를 위해 이만큼 애써본 일이 없지 않은가.
[p.274]
"땅에 발을 대지 않고 사는 거야. 그럼 날 수 있어."
[p.367]
선배는 이마데 강 거리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마치 봄날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선배는 그 햇살 속에서 턱을 괴고 앉아 어쩐지
낮잠 자는 고양이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배 밑바닥에서부터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공기처럼 가볍고 작은 고양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초원에 누운 기분이랄까요.
선배가 나를 알아보고 웃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리하여 선배 곁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어떤 인연.
[p.392]
1년간의 치열한 고군분투 끝에 '나'는 짝사랑하는 그녀와 설레는 첫 데이트를 시작하며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습니다.
짝사랑... 참 힘들다...ㅡ.ㅜ;;
그래도 소설은 행복하게 마무리 지어져서 흐뭇합니다. ^^
소설 속의 주인공이 짝사랑에 시달린 1년이 아무리 치열해도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소설 속 '나'의 1년이 바로 청춘이기 때문이겠죠. ^^
꺼지지 않는 로맨틱 엔진을 장착한 청춘. ^^*
요즘도 이런 말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병맛' 같은 소설이에요. ㅋㅋㅋㅋ
그래서 그런지.. 제가 무척 사랑하는 소설 중 하나입니다. ^^*
저번 부산락페에서 로맨틱펀치가 소설 제목과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생각이 나서 다시 꺼내 읽었는데.. 언제 읽어도 참 엉뚱하고 재밌어요. ^^
'판타지연애소설' 장르에 익숙치 않은 분이시라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내용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읽고 있노라면 교토에서 1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제게 너무나 사랑스러운 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청춘은 밤과 같이 짧으니, 열심히 즐기며 살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