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작가님의 단편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2009년에 이 책을 읽으면서 김연수 작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
어딘가 몽환적인 분위기의 표지가 맘에 들어 덜컥 사버린 책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것은 '어렵다' 였습니다. ^^;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기억할 만한 지나침, 세계의 끝 여자친구,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 내겐 휴가가 필요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달로 간 코미디언...
도무지 한번만 읽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단편소설 아홉 편..
분명히 단편인데 왠지 모르게 연결되어 장편인 것처럼 읽히는 묘한 이야기들..
'이게 뭔 소리야...' 하면서도 왠지 끌리는 마력이었을까요. ^^
인내를 가지고 몇번이나 되새김질하며 읽은 결과,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
죽고 나서야 나는 케이케이의 진짜 이름이 '키준 킴'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여전히 그 이름은 낯설다. 키준. 이제 내가 그 이름을 발음하면, 목소리는 허공으로 풀려나간다.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번도 그 이름을 불러보지 못했다는 것만은 내게 두고두고 슬픔이 된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p.24]
그날은 아침 뉴스에서 노란색 비옷을 입은 캐스터가 손끝으로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기압골을 가리키며 내일부터 무더위가 시작되리라고 예보하던 금요일이었고,
그리고 저녁이었고, 나는 호수를 향해 달려갔다. 옷 속으로 빗물이 스며드는 꼭 그만큼,
그네와 미끄럼틀로 녹이 스는 꼭 그만큼, 기압골이 이제 한반도에서 조금씩 물러나는
꼭 그만큼, 내 스물다섯의 나이도 흘러가고 있었다. 스물다섯의 고민이란 그 고민마저도
꼭 그만큼이라는 것.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꼭 그만큼이라는 것.
['세계의 끝 여자친구' p.72]
도서관에 있는 그 어떤 책을 들춰봐도 거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또 노인이 다시 젊어져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삶은 단 한 번만 이뤄질 뿐이며,
지나간 순간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그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은 말하고 있었다.
['내겐 휴가가 필요해' p.170]
우리가 그 세계를 증언할 수 없다는 것은,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했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망각할 수도 없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 속에서
친구와 가족들은 하나둘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또 죽어갔다. 그의 사진들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복잡한 존재로 살아갔는지, 하지만 그들은 또 얼마나 끊임없이 변해갔는지. 거기 서서 나는
비로소 그가 평생에 걸쳐서 찍은 친구와 가족 들의 일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p.198]
"고통에 대해서 직접 말하는 건 소설이 아니고, 에세이죠. 소설은 단지 작가가 아는
고통을 이야기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내가 죽음을 예감하는 그 권투선수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난 소설로 쓸 수 있어요."
['달로 간 코미디언' p.232]
이 책이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소통'과 '이해'였습니다.
입양아 케이케이를 사랑한 여인과 아들을 잃은 통역사,
전직 경찰관의 죽음을 이해하려는 누군가의 이야기,
외국인과의 소통문제,
그리고 시각장애인과의 소통과 이해 이야기 등등...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전에 존재했던 세계가 붕괴한다는 공식
그리고
소통에서 발생하는 고통에 대한 멋진 단편소설집.
그렇지요.
소통에서는 늘 고통이 발생하고,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죠.
그래서 김연수 작가님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소설을 아프도록 어렵게 쓰신 것일지도..ㅋㅋ;;
여튼...
이 책은 제가 김연수 작가님의 팬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주었다는 사실. ^^
김연수 작가님이 앞으로도 독특하면서도 심오하고 멋있는 작품을 많이 써주시길~
그 길을 저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