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여자

옥상에서 만나요

하얀 종이 2019. 2. 2. 15:05

 

 

 

 

정세랑 작가님의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입니다.

 

제목이 참 다정한 느낌. ^^

 

 

 

한 벌의 웨딩드레스에 담긴 그녀들의 이야기 '웨딩드레스 44'

 

끈적이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그녀 '효진'

 

전근대 한일관계사를 바탕으로 여성 '은열'을 상상한 소설 '알다시피, 은열'

 

절망을 빨아들이는 남편 '옥상에서 만나요'

 

과로사한 언니를 애도하고자 친구들과 '돌연사맵'을 만드는 이야기 '보늬'

 

곶감을 먹으면 죽는 뱀파이어가 되고 만 여자의 이야기 '영원히 77사이즈'

 

방글라데시 유학생 이스마일의 과자 귀 '해피 쿠키 이어'

 

이혼한 뒤 살림을 처분하는 이재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 '이혼 세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나라가 화살편지로부터 오해를 쌓아가는 '이마와 모래'

 

 

독특한 판타지와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이 공존하는 아홉 편의 단편소설.

 

기대한 만큼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기본적으로 잔잔하게 굴욕적이야.

내 시간, 내 에너지, 내 결정을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아. 인생의 소유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간 기분이야." 

['웨딩드레스 44' p.18]

 

 

 

 

 

 

 

 

 

 

 

 

 

 

 

 

 

그 발음이 좋아서, 남자친구의 약간 길고 흰 얼굴이 좋아서, 안경이 잘 어울려서,

자다가 작은 지진이 있을 때면 명치 부분을 단단하게 안고 눌러줘서, 우울해할 때면 판다 동영상을 보여줘서,

대충 그런 이유로 좋아해. 중국인들은 어쩐지 판다에 대해서 쿨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더라.

어두운 방에서 모니터만 빛내며 판다 동영상을 무한 반복해서 보고 있는

남자친구를 보면 가끔 짠해. 그런 날은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이거든.

너도 힘들구나, 그게 우리 관계의 바탕인 거 같아.

['효진' p.47]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니 부디 발견해줘.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너의 운명적 사랑을.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기이한 수단을.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

['옥상에서 만나요' p.116]

 

 

 

 

 

 

 

 

 

 

 

 

 

 

"냉정해져야 해. 위로가 목적이 아니니까."

['보늬' p.127]

 

 

 

 

 

 

 

 

 

 

 

 

 

 

 

 

언니 방에 들어가면 항상 눈물 냄새가 났다. 없는 냄새를 맡는 나에게도 어딘가 이상이 생긴 걸 수 있었지만,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분명 눈물 냄새가 났다. 엄마인지 아빠인지 그 방에서 우는 게 틀림없었다.

바닷바람의 소금기와는 다소 다른, 희미하고 슬픈 동물성 소금 냄새때문에

나는 그 방에 들어갈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보늬' p.132]

 

 

 

 

 

 

 

 

 

 

 

 

 

 

 

 

 

"그냥, 결혼이 부동산으로 유지되는 거란 생각을 했어. 도무지

감당이 안되는 금액의 집을 사고, 같이 갚으면서

유지되었을 뿐인 게 아닐까." 

['이혼 세일' p.222]

 

 

 

 

 

 

 

 

 

 

 

 

 

 

 

 

 

 

 

 

소설 속 그녀들은 휴식처, 즉 옥상을 원합니다.

 

구멍난 일상을 채워주는 공간을 원하죠.

 

 

여자들은 공감 능력이 발달해서 곁에 누군가 아프거나 슬프면

 

금방 공감대가 형성되고,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느낀다고 합니다.

 

 

여성 작가가 쓴 여자들의 소설이라 그런지,

 

읽으면서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판타지와 현실이 공존하는 특이한 소설.. 저도 써보고 싶어요. ^^

 

특이한 소재와 매력적인 캐릭터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어요.

 

 

 

정세랑 작가님의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