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2022'입니다.
해마다 개최되는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은 우수한 단편소설을 선정해 책은 물론이거니와
웹툰,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2차 콘텐츠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콘텐츠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공모전이죠.
매년마다 잊지 않고 읽는 이 소설집을 이번에도 읽었습니다.
정욱 작가님 소설, 학폭 피해자 민영이 학폭 가해자 수린의 딸을
납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네 딸을 데리고 있어'
김이담 작가님 소설, 정규직과 인턴간의 경쟁 사회인 회사에서 만난
완벽한 남자 인턴 재현의 비밀을 다룬 이야기 '조립형 인간'
청예 작가님 소설, 그야말로 한방을 꿈꾸는 사람들의
주식 재테크 클럽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이야기 '웬즈데이 유스리치 클럽'
오승현 작가님 소설, 재개발과 층간 소음과 외계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라는
소재가 버무려진 이야기 '밸런타인 시그널'
임수림 작가님 소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로봇의 이야기 '너에게'
모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처음엔 민영도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몰랐지만 이내 깨달았다. 민영은 수린에게서 흔적을 찾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행동이 자신뿐만 아니라 수진에게도 상처가 되었기를,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다친 것이 아니라
다치게 한 사람에게도 흉터로 남았기를, 그래서 그 흔적이 어른이 된 지금도 남아 있기를 바랐다. 자신은 그랬으니까.
십수 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수린에게서 작은 생채기라도
발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딸을 데리고 있어' p.21]
남자는 여자를 구석진 자리에 앉혔다. 여자는 아무것도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재현 씨는, 뭐예요? 여자가 물었다. 남자는 손가락을 뻗어 테이블을 피아노라도 치듯이 두드렸다. 살과 뼈로
이루어진 그 손은 분명 의수 같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에게서 마치 도마뱀의 꼬리처럼 분리될 수가 있었다.
희주 씨는 저 같은 인간을 아직 만나본 적이 없나 보군요? 남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저는 그러니까,
조립된 인간이죠. 예를 들자면 레고처럼.
['조립형 인간' p.61]
온몸이 계속해서 달아오른다. 머리가 쫙 조여지는 통증이 느껴진다. "부자가 될 그릇이 충분하십니다." 리더가
믿음직스럽게 웃어주며 속삭였다. 그 미소에 용기가 생겨 어깨를 감싼 그의 팔을 붙잡았다. 난 잘살고 싶다. 돈을 벌고
싶다. 이 구질구질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뜨거워진 얼굴을 차갑게 식은 손으로 감싸본다. 펄펄 끓는 체온이
느껴진다. 그래, 나는 살아 있다. 아직 더 잘될 수 있다. 기회가 있다. 오직 이 욕망만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나는 가난해지지 않아. 고작 몇 안 되는 돈에 울고 웃지 않아. 내가 웬유클에 온 목적을 잊지 않아.
['웬즈데이 유스리치 클럽' p.107]
"당신, 그거 알았어요? 그날이 밸런타인데이였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요. 그리고 인간들은
초콜릿을 받고 한 달 후에 사탕을 되돌려준다고 하네요. 화이트데이라던가? 참 낭만적인 관습이죠."
두 손을 모으고 한쪽 볼에 살포시 댄 여자는 TV에서 배운 동작이 맞는지 창유리로 자기 모습을 확인했다.
"재밌네요. 그럼 잠실은 그날로 해야겠어요."
여자는 고개를 돌렸다. 노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밝은 기운을 잃고 점점 붉어져가는 지구의 대기를 바라보며
여자는 매번 자신들을 보며 얼굴을 붉혔던 한 사람을 떠올렸다. 조라고 했던가. 그와 더 이야기를 나눴다면 어땠을까.
할 말이 꽤 많은 사람 같았는데.
['밸런타인 시그널' p.174]
그 이야기 기억나? 한 소년이 온 마을을 구하기 위해
자기 옷을 다 벗어서 뭉친 다음, 댐의 구멍을 막고 있었다는.
넌 오래전에 휩쓸려갔을 내 세계를
네 손으로 다 막아준 거야.
난 네 손이 무르고 터져도 못 본 체했지.
미안해.
이제 손 빼도 괜찮아.
구멍에서 손 빼.
정말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괜찮아.
이젠 내 손으로 댐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그 용기를 주었으니까.
['너에게' p.215]
해마다 나오는 이 수상작품집을 읽으면, 작가님들의 풍부한 감수성과 뛰어난 필력에 감탄하곤 합니다.
다 흥미진진하고 좋은 작품이었지만, 저는 임수림 작가님의 단편소설 ‘너에게’라는 작품이 인상 깊었습니다.
다섯 편 모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멋진 단편소설들이었어요.
다만, 이 작품집을 통해 판타지 뿐만 아니라 스릴러, 역사 등 다양한 장르소설도 만나고 싶은데
너무 판타지 장르에만 치우쳐 있어 좀 아쉬웠어요.
튼튼하고 이뻤던 지난 수상작품집 표지에 비해 이번 책은 표지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세상에는 슬프고 아픈 이야기도 많지만 그만큼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많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을 통해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재미있는 단편소설들로 가득한 책,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2022'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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