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적 님의 소설집 '지문사냥꾼'입니다.
무려 13년 전에 나온 책.
가수 이적이라면 뮤지션으로서의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 또한 갖추고 계신 분이죠. ^^
대개 연예인이 쓴 책이라 하면 선입견을 먼저 갖게 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오래전에도, 망설이지 않고 덥석 집었던 기억이 납니다. ^^
활자를 먹는 그림책, 음혈인간으로부터의 이메일, 제불찰 씨 이야기,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 지문사냥꾼, S.O.S. , 모퉁이를 돌다 등등...
이적 님의 기괴하고 특별한 상상력이 살아 숨쉬는 소설집 '지문사냥꾼'
한편의 판타지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
그럼 안녕히... 건강하시길... 무지개가 흐르는 피여...
['음혈인간으로부터의 이메일' p.20]
그곳은 거센 바람이 불어대는 벌판이었다. 머리 위 하늘로는 거대한 나방 떼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흰 가루가 벌판으로 떨어졌고, 그럴 때마다 벌판이 꿈틀거렸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낭떠러지의 뚫려 있는 작은 동굴의 끝자락이었다. 저 멀리 지평선까지 시야가 트여 있었고, 거칠게 솟아 있는 산자락엔
어린 소녀의 작은 손, 어머니인 듯한 여인의 치맛자락, 쾌감에 일그러진 어느 남자의 얼굴들 수많은 영상이 빠르게
점멸하고 있었다. 서늘한 공포와 함께, 뜨거운 호기심이 솟아올랐다. 제씨는 불어오는 폭풍에 몸을 실어
그녀의 정신의 벌판으로 뛰어내렸다. ['제불찰 씨 이야기' p.53]
고양이는 모든 걸 알고 있고, 모든 걸 할 수 있다.
동시에 대부분의 고양이는 모든 걸 '귀찮아하기에' 다행히도 세상이 이만큼이나마 평화로울 뿐. 하지만 만약 내가
장화 신은 고양이의 꾐에 넘어가 그를 가까이 하게된다면, 부자가 된 지 일주일 만에 생쥐로 바뀌어
아드득아드득 씹히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양이' p.84]
코미디는 웃긴 장면 다 보여주고, 액션은 내세울 장면 다 보여주니까 막상 극장에 가면 니미 벌써 한 번 본 영화 다시 보는 거 같애.
도저히 안 되겠다니까, 이 새끼들 가만히 있으면 좋아하나보다 그러고 더 해대는 게 습성이야. 두고 봐요. 다음 주말께
폭발 사고 몇 건 생길 거요. 고맙단 말은 필요 없으니까 집에서 조용히 박수나 쳐줘. ['자백' p.100]
"왜 나를 속였죠. 왜 당신마저 나를 속였죠. 내가 빼앗은 것들을 그들에게 돌려줄 수만 있다면...
왜 내게 그런 힘은 없는 걸까요." ['지문사냥꾼' p.159]
웃음을 만면에 머금으며 새로운 모퉁이를 향해 발걸음으로 옮겼으나,
천 근이 뒤에서 잡아끄는 것 같아 돌아보니, 내 꽁무니에 날 때부터 그랬던 듯 굳건한 가방이 매여 있었다.
그때, 혹시 그가 가방 속으로 들어와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자, 공포가 엄습해왔고,
동시에 허겁지겁 편지를 뜯고는, 그 짧은 명령에 절망하였다.
"살라."
['모퉁이를 돌다' p.176]
사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바로 그거예요
어느 날
처음에 내게 왔던 것처럼 홀연히
나의 피아노가 어디론가 가버리면 어떡하죠
['피아노' p.188]
이적 님의 글과 노래들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정말 이 지구에는 외계인이라는 게 존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외계인이지만, 스스로도 미처 알지 못한 인간의 탈을 쓴 존재들 말이죠.
더이상 책은 출간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던 이적 님.
글은 쓰지 않겠다 하셨지만..
저는 여전히 그의 노래들 속에서
이야기를 읽습니다.
멜로디를 타고 흐르는 수많은 동화와 소설들...
가수 이적 님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소설집 '지문사냥꾼'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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