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여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하얀 종이 2019. 12. 16. 15:39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입니다.


93년생이라는 젊은 나이와 화학 전공자라는 프로필이


가장 강하게 이 소설을 읽고 싶은 이유였어요. ^^*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추천까지 받다니...


너무 부럽고, SF소설이 대체 어떤 소설일까 궁금했습니다. ^^



표지도 작가님 만큼이나 너무 이쁘네요. ^^


독자 후기도 다 좋아서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습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신인류가 탄생된 이후의 이야기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외계 생명체 탐사를 위해 떠났던 할머니가 40년 만에 구조되어 손녀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 '스펙트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를 그리며 다섯 살 때부터 자신이 그곳에서 왔다고

말하는 류드밀라 그리고 실제 그 행성이 발견되고, 뇌 해석 연구소에서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이

류드밀라의 행성을 우리의 행성이라 하며 그리워하는 이야기 '공생가설'


냉동 수면 기술을 연구하던 안나는 남편과 아들을 슬렌포니아 제3행성으로 먼저 보내고

일을 마무리한 뒤 떠나려는 날, 슬렌포니아 행 마지막 우주선을 놓쳐버리고.. 안나는 100년도 더 전에

폐쇄된 우주 정거장에 자신의 낡은 우주선을 도킹해두고 가족에게 가기 위해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언젠가부터 행복, 설렘, 침착, 공포, 우울 등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 등장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감성의 물성'

 

사후 마인드 업로딩이 보편화되어 도서관이라 불리는 곳에

죽은 자들의 영을혼 데이터로 남기는데.. 어느 날 지민의 죽은 엄마의 마인드가 사라지며 벌어지는 이야기 '관내분실'

 

터널을 통해 우주의 저편으로 넘어갈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에 발탁된 가윤은 신체 개조를 하기 전,

검진을 받다가 담당자로부터 전임 비행사이자 가윤이 이모라 부르던 최재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가윤은

자신의 우주 영웅이었던 재경 이모가 발사 전날 대기 지역을 이탈해 도망쳤다는 사실을 담당자가 말해주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서는 가윤의 이야기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책 속 모든 단편소설이 다 재미있었습니다. ^^


















떠나겠다고 대답할 때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 얼굴들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p.54]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느슨해졌다. 루이가 바로 며칠 전까지 함께 지내던 바로 그 루이처럼 느껴졌다.

루이는 희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희진의 뒤로 펼쳐진 노을을 보고 있었다.

"그럼 루이, 네게는."

희진은 루이의 눈에 비친 노을의 붉은 빛을 보았다.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희진은 결코 루이가 보는 방식으로 그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진은

루이가 보는 세계를 약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고, 기쁨을 느꼈다.

['스펙트럼' p.88]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p.181]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감정의 물성' p.216]

 

 

 

 

 










지민은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지민을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두려웠을까. 그렇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엄마.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 씨. 지민은 본 적 없는 그녀의 과거를 이제야 상상할 수 있었다.

['관내분실' p.267]

 

 

 

 












심해를 유유자적 유영하는 재경 이모를 상상하는 것은 우주에 있는 이모를 상상하는 것보다

차라리 쉬웠다. 심해로 내려간 재경 이모. 그건 너무 아득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아무렇게나 그려도 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이모는 새로 단 아가미로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따라 헤엄치겠지. 그러면서 지상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한심한 일들을 마음껏 비웃고 있을 것이다. 가윤은 그곳의 깊은 어둠이

우주와도 닮아 있으리라고, 그래서 이모는 망설임 없이 바닷속으로 떠났으리라고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가윤은 아직 한 가지가 궁금했다. 이모는, 우주의 저편을 보지 못한 것을 그래도 조금은 아쉬워할까?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p.314]



















저는 '감정의 물성'과 '관내분실'을 인상깊게 읽었어요.


특히 '관내분실'은 저도 예전부터 상상해오던 건데,


이렇게 감성적인 소설로 만나니 반가웠어요. ^^



저는 SF 소설이라 해서 읽기 전에는 지레 겁을 먹고


'너무 어려운 이야기라 내가 이해를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좀 했는데,


어려울 수도 있는 과학적인 소재를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전개해주셔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



이런 종류의 SF소설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



김초엽 작가님의 흥미진진한 SF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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