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 작가님의 수필 '천국이 내려오다'입니다.
김동영 작가님의 라이브방송을 보다가 알게 된 작가님의 신간 소식!
출간일에 맞춰 책이 나오자마자 얼른 샀습니다. ^^
발리의 우붓, 인도의 바라나시 화장터, 미국의 95번 국도,
이탈리아의 로마, 러시아의 올혼섬 등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여행의 시간 속에서
작가님은 천국과도 같은 순간을 만납니다.
힘든 일상과 지옥 같은 여정 속에서
짧지만 달콤한 천국이 내려오는 순간을 기록한 수필.
재밌게 읽었습니다.
"대단하지 않아?" 아서가 내게 물었다. 나는 "진짜"라고 대답했다.
그는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마치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상의 비밀을 내게만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p.77]
깨어있는 남반구의 인간 중에 내가 가장 완벽한 순간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그 새벽처럼 내가 완벽하게 취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그게 아쉽다. 혹시 그렇게 취한 날이 다시 찾아올지 몰라 당장 마시지 않을 와인을 가끔 산다.
[p.119]
글을 쓰다 보면 잘되는 날도 있고 더럽게 안 써지는 날도 있다.
대체로 안 써지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가 생각해도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게 되면 난 바로 천국으로 간다. 그 천국의 느낌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지옥을 보낸다.
[p.135]
집으로 돌아와 그때 찍은 사진 중에 내 뒷모습이 찍힌 사진을 봤다. 서점에서 만난 친구가
찍어준 기억이 났다. 문득 내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의 뒷모습도 내가 동경했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세상에 남길 뭔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처럼
동경하는 걸 지치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단 몇 퍼센트라도
현재와는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전부다. 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되는 거.
[p.157]
오로라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무런 징후 없는 까만 하늘에 오로라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작고 희미한 빛으로 시작해 물에 떨어져 번지는 한 방울 잉크처럼 점점 머리 위에서
퍼져가다 하늘하늘한 엄마의 여름 치맛자락처럼 아주 느리게 펄럭이며
낮게 공중에서 부유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하게 와인 잔이 살짝 부딪는 것 같은 소리가 언 공기 중에서 들렸다.
[p.210]
바람은 두 볼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내 안을
채우고 있던 모든 감정이 첫 바람에 실려 모두 세상으로 날아가버리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도시에서 시작해 온 세상으로 불어 가는 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이곳이 왜 바람이 시작되는 곳인지 그리고 왜 바람이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곳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유일하게 세상의 시작점에 있었고, 세상이 끝나는 곳에 서있었다.
[p.231]
글을 쓰다 맘에 드는 문장을 쓰면 천국을 맛본다고, 그 순간 때문에 지옥 같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문장이 어찌나 맘에 들었는지.. 노트에 옮겨 쓰기도 했어요. ^^*
책 속에서 천국이란 단어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김동영 작가님은 여행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신다는 거겠죠.
사실 김동영 작가님의 여행은 편안하기만 한 호화로운 여행은 아닙니다.
사람을 잃거나 길을 헤매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고 또 그 관계를 정리하기도 하며,
슬픔과 외로움을 달래기도 합니다.
그 여행은 꿈 같으면서도 우리네 일상과도 닮은 부분이 많아 책을 읽으면서 공감을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지옥 같은 인생에 잠시나마 찾아오는 천국이 내려오는 순간들.
그 천국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김동영 작가님의 수필 '천국이 내려오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책읽는 여자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험한 비유 (0) | 2020.03.20 |
---|---|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0) | 2020.02.14 |
지금 이대로 좋다 (0) | 2020.01.07 |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0) | 2019.12.27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0) | 2019.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