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2021’입니다.
매해 개최되는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은 여러 부문의 수상작들 중
단편소설들을 모아 작품집을 출간하는데요.
저도 이 시리즈가 재미있어서 매해 빠지지 않고 구입해 읽고 있어요.
김백상 작가님의 소설, 편의점 사장이 주변에 들어온 편의점 영업을
방해하려다 되려 당하게 되는 이야기 ‘조업밀집구역’
윤살구 작가님의 소설, 인어였지만 인간으로의 삶을 살다 다시 인어로서 죽음을 선택한 할머니를
손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 ‘바다에서 온 사람’
김혜영 작가님의 소설, 방에서 솟아오른 토막을 없애려는 취업준비생과 유튜버의
눈물겨운 분투기를 그린 이야기 ‘토막’
박선미 작가님의 소설, 귀촌한 교장선생님 가족과 이혼한 딸 그리고
친절하지만 수상한 마을 사람들과 휠체어를 타는 여자가 그리는 섬뜩하고 통쾌한 이야기 ‘귀촌 가족’
황성식 작가님의 소설, 검은 길고양이 웨인의 먹이를 챙기며 자신을
집사 알프레드라고 여기는 히키코모리 여주인공이 고양이를 보살피고자 고양이 목에 카메라를 달았다가
우연히 범죄사건을 목격 후 남을 돕기 위해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이야기 ‘알프레드의 고양이’
다섯 편 모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빗줄기가 하나 된 부자의 몸뚱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세상은 부서지는 빗소리로 가득했다.
빗방울들의 무수한 아우성에 응답하듯 강렬한 섬광이
하늘을 갈랐다. 뒤이어 우렁찬 천둥소리가 천지를 깨웠다.
문득 만우의 팔뚝에서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꿈틀댔다. 온몸을 뒤덮은 비늘은 갑옷처럼 탄탄했고,
커다란 눈알엔 생기가 넘쳤다. 두툼한 주둥이는 무엇이든 집어삼킬 것 같았다. 잠시 몸을 뒤틀던 잉어는 허물을
빠져나오듯 만우의 팔뚝을 벗어났다. 그리고 곧 빗물이 흘러가는 거리로 풍덩, 뛰어들었다. 하염없이 비가 쏟아졌다.
['조업밀집구역' p.63]
"이거 봐라. 할머니 손 봐. 할머니는 이런 굴곡들이 참 좋더라. 없애고 싶지 않거든. 계속 가지고 가고 싶어.
사실 처음부터 알고도 남기로 한 거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도 내가.... 그렇지만 내 인생이잖니. 내 선택이고.
후회하지 않아. 내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어. 그러니까 내 죽음을 슬퍼해주렴, 얘야."
['바다에서 온 사람' p.88]
"여기서 돌아가면 뭐가 되겠어요?"
"뭐가 되는데요?"
"토막 같은 거."
우리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진 땅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열심히 몸을 기울인 채로 걷고 또 걸었다.
나는 로라펑이 말한 토막 같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이미 생겨버렸으니 어떻게 하려야 할 수 없는 그런 존재.
집안의 공간을 차지하면서 생산적인 어떤 것도 하지 않는 존재. 내다 버릴 수도, 죽일 수도, 왜 저렇게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존재. 하지만 그들의 한 토막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그런 존재.
['토막' p.139]
수십 개의 까만 머리통들. 수십 개의 눈. 저 시선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주먹 쥔 손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지듯 지하철 문밖으로 나갔다. 나도 몸을 일으켜 세워 흐름에
몸을 맡기며 빠져나왔다. 이대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역 밖으로 나가 택시를 탔다.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에서 멀어지자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약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곳으 돌아갔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은, 끝없이 시커먼 어둠이었다.
눈을 감았을 때보다 더 진하고 깊은 그런 검은색이었다.
['토막' p.157]
말없이 연우를 쳐다보는 정아에게 연우는 웃지도 않고 조용히 말했다.
"복수는 원래 남이 해주는 거예요."
연우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정아는 봉투를 열었다. 발신자가 적혀 있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봉투 안에는 짧은 메모가 하나 들어 있었다.
'시골 사람이라고 다 순박한 건 아니라고 했죠. 도시에서 귀촌하러 온 가족도 다 순수한 마음으로
오는 건 아니에요. 그 비율은 세상 어딜 가도 비슷하지 않겠어요?'
봉투 안에 들어 있던 직사각형의 물건 역시 열어보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연우가 자신을 찾아왔던 날, 책상에 펼쳐두었던 패션 잡지 속의 립스틱. 그 립스틱이
잘 포장되어 들어 있었다. 정아는 몇 년 만에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귀촌 가족' p.208]
"난 항상 네 편이었다. 네가 다치는 게 싫었을 뿐이야."
아빠의 목소리에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특유의 단호함이 있었다. 나는 조용히 놀랐다. 그리고 갑자기
웨인의 목에 카메라를 달던 때가 떠올랐다. 아빠가 그때의 나처럼 느껴졌다. 나도 웨인이 다치는 게 싫었다.
그래서 그렇게 억지로 카메라를 달았던 것이다. 웨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팔려
웨인을 믿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걱정이 되더라도 상대를 믿고 밖으로 내보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도움은 도움일 뿐, 부딪히며 살아가는 건 당사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항상 최고의 집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제야 겨우 집사 자격을 얻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 순간에
거기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아빠에게 대꾸해야 할 말이 뭔지
깨달았을 뿐이다. 웨인도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알프레드의 고양이' p.255]
이번 책은 어느 작품이 가장 좋다고 뽑기 힘들 만큼
모든 작품들이 다 재미있었어요.
영상화되어도 무척 재미있을 것 같은 소설들이었어요.
여느 문학 공모전이 다 그렇겠지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또한 작품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너무 부러운 필력의 작가님들.
세상에는 힘들고 괴로운 이야기도 많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난 이야기들도 많죠.
많은 사람들이 소설, 웹툰, 드라마, 영화 같은 작품들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즐기고 삶의 여유를 찾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흥미로운 단편소설들로 가득한 책,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수상작품집 2021’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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