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여자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하얀 종이 2021. 6. 15. 15:46

 

정현우 작가님의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입니다.

 

작가님 인스타그램에서 출간 소식을 봤는데,

표지가 너무 이뻐서 구입했어요.

 

표지만큼이나 내용도 아름다운 책입니다. 

 

 

아기들이 말을 배우기 전,

어른들은 못 알아듣는 옹알이를 '천사의 말'이라고 하죠.

 

그 말들을 세상의 언어로 번역해 만든 분위기의 시편들이었어요.

 

 

 

 

 

 

 

 

 

 

 

 

 

 

 

 

 

 

- 귀와 뿔

눈 내린 숲을 걸었다.
쓰러진 천사 위로 새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천사를 등에 업고 
집으로 데려와 천사를 씻겼다.
날개에는 작은 귀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귀를 훔쳤다.
귀를 달빛에 비췄고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다.

[p.18]

 

 

 

 

 

 

 

 

 

 

 

 

 

 

 

 

 

-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간밤의 꿈을 모두 기억할 수 없듯이, 용서할 수 있는 것들도 다시 태어날 수 없듯이, 

용서되지 않는 것은 나의 저편을 듣는 신입니까, 잘못을 들키면 잘못이 되고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용서할 수 없는 것들로 나는 흘러갑니다. 검은 물속에서, 검은 나무들에서 

검은 얼굴을 하고, 누가 더 슬픔을 오래도록 참을 수 있는지, 

일몰로 차들이 달려가는 밤, 나는 흐릅니까. 누운 것들로 흘러야 합니까.

[p.24]

 

 

 

 

 

 

 

 

 

 

 

 

 

 

 

 

- 용서

겨울, 불어오는 잎들이 
한밤의 불면으로 들어가 
오직 하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데, 
견딜 수 있는 것들만 고통을 준다는 
신은
없다.
그것은 사물의 시작 
사람이 끝에 매달리는 것 
불쑥 찾아와 사라지는 
죄를 사해주세요.

[p.79]

 

 

 

 

 

 

 

 

 

 

 

 

 

 

 

 

- 오, 라는 말은

손을 꽉 쥐고 태어나는 인간은 
지울 수 없는 슬픔을 
듣고 
말하고 
세라고 
다섯 개의 손가락을 가진 것

[p.102]

 

 

 

 

 

 

 

 

 

 

 

 

 

 

 

 

 

- 늦잠

저 눈 고개를 넘어 주검 속을 
다녀올 수 있다면 
내가 서두를 수 있다면 
미안, 내가 많이 늦었다고

인간에게 잠이 없다면
어떤 이별도 없겠지. 

나는 잠이 들 때마다 
그곳에 갈 수 있다.

[p.120]

 

 

 

 

 

 

 

 

 

 

 

 

 

 

 

 

 

- 여름의 캐럴

눈이 쌓이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눈을 뜨지 않는 문장,
이미 울어버린 두 눈만 부여잡지

천사가 오기까지 내기해
눈을 감은 사람이 지는 거야
먼저 죽으면 안 되니까 
누구라도 따라 울어버리면 안 되니까 

스스로 우는 오르골 
하나,

둘, 셋
하면 눈을 감는 거야

[p.130]

 

 

 

 

 

 

 

 

 

 

 

 

 

 

 

 

 

 

 

 

 

 

시 속의 화자는 방황합니다.

 

가족 속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세상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휘청거리죠.

 

 

그 속에서 화자가 의지할 곳이라곤 마음속 천사밖에 없는데,

 

작가님은 그 외로움과 슬픔을 넘무나 서정적인 시적 언어로 

표현해주셨어요.

 

 

 

말문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노을 풍경을

나 혼자서 우두커니 서서 보는 기분...

 

너무 슬프고 외로운데, 한편으론 너무 좋은 기분이 드는 책이었어요.

 

 

 

정현우 작가님의 첫 책이 이렇게 감동적이라면,

작가님의 다음 책도 기대할 수 있겠죠?

 

 

 

 

 

 

정현우 작가님의 서정적인 감성이 고스란히 담긴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