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우 작가님의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입니다.
작가님 인스타그램에서 출간 소식을 봤는데,
표지가 너무 이뻐서 구입했어요.
표지만큼이나 내용도 아름다운 책입니다.
아기들이 말을 배우기 전,
어른들은 못 알아듣는 옹알이를 '천사의 말'이라고 하죠.
그 말들을 세상의 언어로 번역해 만든 분위기의 시편들이었어요.
- 귀와 뿔
눈 내린 숲을 걸었다.
쓰러진 천사 위로 새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천사를 등에 업고
집으로 데려와 천사를 씻겼다.
날개에는 작은 귀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귀를 훔쳤다.
귀를 달빛에 비췄고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다.
[p.18]
-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간밤의 꿈을 모두 기억할 수 없듯이, 용서할 수 있는 것들도 다시 태어날 수 없듯이,
용서되지 않는 것은 나의 저편을 듣는 신입니까, 잘못을 들키면 잘못이 되고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용서할 수 없는 것들로 나는 흘러갑니다. 검은 물속에서, 검은 나무들에서
검은 얼굴을 하고, 누가 더 슬픔을 오래도록 참을 수 있는지,
일몰로 차들이 달려가는 밤, 나는 흐릅니까. 누운 것들로 흘러야 합니까.
[p.24]
- 용서
겨울, 불어오는 잎들이
한밤의 불면으로 들어가
오직 하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데,
견딜 수 있는 것들만 고통을 준다는
신은
없다.
그것은 사물의 시작
사람이 끝에 매달리는 것
불쑥 찾아와 사라지는
죄를 사해주세요.
[p.79]
- 오, 라는 말은
손을 꽉 쥐고 태어나는 인간은
지울 수 없는 슬픔을
듣고
말하고
세라고
다섯 개의 손가락을 가진 것
[p.102]
- 늦잠
저 눈 고개를 넘어 주검 속을
다녀올 수 있다면
내가 서두를 수 있다면
미안, 내가 많이 늦었다고
인간에게 잠이 없다면
어떤 이별도 없겠지.
나는 잠이 들 때마다
그곳에 갈 수 있다.
[p.120]
- 여름의 캐럴
눈이 쌓이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눈을 뜨지 않는 문장,
이미 울어버린 두 눈만 부여잡지
천사가 오기까지 내기해
눈을 감은 사람이 지는 거야
먼저 죽으면 안 되니까
누구라도 따라 울어버리면 안 되니까
스스로 우는 오르골
하나,
둘, 셋
하면 눈을 감는 거야
[p.130]
시 속의 화자는 방황합니다.
가족 속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세상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휘청거리죠.
그 속에서 화자가 의지할 곳이라곤 마음속 천사밖에 없는데,
작가님은 그 외로움과 슬픔을 넘무나 서정적인 시적 언어로
표현해주셨어요.
말문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노을 풍경을
나 혼자서 우두커니 서서 보는 기분...
너무 슬프고 외로운데, 한편으론 너무 좋은 기분이 드는 책이었어요.
정현우 작가님의 첫 책이 이렇게 감동적이라면,
작가님의 다음 책도 기대할 수 있겠죠?
정현우 작가님의 서정적인 감성이 고스란히 담긴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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