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 작가님의 장편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입니다.
꽤 오래 위시리스트에 있었는데.. 이번에 읽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말을 더듬습니다. 엄마는 나를 스프링 언어 교정원에 보냈어요.
나는 그곳에서
말하는 중 단어가 막히면 기절을 하는 누나와 말을 못하는 척하는 형,
말은 못하지만 글은 잘 쓰는 작가 아저씨, 외과의사지만 자기가 원하지 않는 말은 거부하는 이모,
나에게 늘 계피사탕을 주며 나를 아들로 생각하는 할머니를 만나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나를 놀리고 국어 선생은 일부러 책읽기를 시키며,
집에는 엄마와 엄마의 쓰레기 같은 애인이 있어요.
나는 말더듬증 교정의 일환으로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거나 길을 묻고 물건을 팔거나 스피치를 하고,
수첩에는 말하기 힘든 말이나 어려운 단어와 문장을 적습니다.
수첩에 쓰인 단어 중 하나를 그 달의 이름으로 쓰면서
매달 이름을 바꾸는 형, 누나와 함께 국어 선생에게 복수할 방법을 고민하기도 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말더듬증’이라는 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입니다.
웅변 학원과는 다르단다. 말을 잘하게 해 주는 곳이 아니야. 말을 하게 해 주는 곳이지.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라고 할 순 없는 법이거든. 용기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용기를 내라고 할 수
있지만 용기란 게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에겐 그렇게 말해선 안 돼. 당연하지. 낼 용기가 없으니까.
힘없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도 이상해. 힘이 있었으면 힘을 냈겠지. 안 그래?
[p.11]
예전에는 그냥 네네, 라고 인사했고 더 예전에는 짧게 네, 라고 인사했다. 지금 인사는 너무 밝고 명랑하다.
좋지만 어쩐지 그래서 더 슬프다. 엄마는 밝게 인사하며 전화기에 힘을 다 뺏기고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가
네네, 할 때가 좋았다. 엄마가 짥게 네, 할 때는 더 좋았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것들이 좋지 않다.
안녕하시냐고? 아니, 하나도 안녕하지 않다. 하나도.
[p.42]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 뒷좌석에 앉아 노트를 펼쳐 그동안 썼던 것들을 쭉 읽어 봤다. 하기 어려운 말. 할 수 없는 말. 해도 해도 더듬는 말. 단어와 문장을 낙서하듯 써 내려간 깨알 같은 글씨가 장마다 가득했다. 그것은 마치 입술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가둬둔 감옥 같았다. 나는 속으로 그것들을 하나씩 읽어 봤다. 마음의 세계에서는 막힘이 없다.
입술에 살짝 올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더듬지 않는다.
참 이상하지. 말이 뭐길래. 소리가 뭐길래. 이렇게 한마디 하는 게 힘든 걸까.
[p.66]
왜 사냐니. 무슨 질문이 그래. 아들. 알려 줄 테니까 잘 기억해. 왜 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그냥 살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래. 그냥 사는 게 사는 데 있어 가장 큰 이유야. 다른 이유는 없어. 돌멩이가 왜 딱딱한 지 아니?
왜 나무는 말을 못하게? 몰라. 나무도 돌도 몰라. 사람도 그래. 사는 데 이유는 없어.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사는 건
피곤해지고 슬퍼진단다.
[p.102]
너 그때 잘했어. 정말 잘했어. 멋있었어. 용감했고. 정말이야.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는데 네가 도망가 버렸잖아.
난 그때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야기하면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할 것 같았다. 화내기도 싫고 울기는 더 싫었다.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24번은 장갑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나 사실 기절하는 거 아니야. 그때 방송할 때 말이 막혀서 기절했다고 했잖아. 사실 아니었어. 기절한 척한 거지. 나는
이걸 고치길 원하면서 정작 말을 더듬을 것 같으면 도망가 버렸어. 어렵지 않은 말, 문제없는 말만 계속하면서.
그런데 넌 아니었어. 넌 잘했어. 넌 정말 잘했어. 내가 봤어. 너 말하는 거.
[p.125]
하나도 잊지 않을 거다. 어떤 기억도 희미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때문에 써야 했다. 기록해야 했다.
그것들은 콸콸 쏟아지는 물 같아서 작은 두 손과 평평한 종이에 담아 내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대충
요약할 수 없었다. 최대한 자세하게 써야 했다. 그렇게 하려니 한 장면 한 기억을 쓸 때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상관없었다.
밤은 길고 잠도 안 오고 무엇보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자세하게 쓰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피츠가 말했던 문학적 표현인가 뭔가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감도 오지 않았고 떠오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 곁에 있긴 있었다. 나와 종이 사이 한 뼘도 안 되는
허공 속에 아지랑이처럼 투명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걸 잡을 방법이 있을까?
[p.144]
소설 속의 '나'는 언어 장애 때문에 가정과 학교에서 소외받는 약한 소년입니다.
그런 소년을 보듬어주고 에너지를 채우게 해준 이들은 다름아닌 스프링 언어 교정원 사람들이죠.
어딘가 부족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은 그들이 말이죠.
이 소설에서 저는 '연대'의 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더라도, 의견이 맞고 같은 목표를 가진 이들이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 소통을 하죠. 하지만 그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이해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짧은 말 한마디로도, 눈빛으로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까요.
저도 마음으로 소통하며 이해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정용준 작가님의 장편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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