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시코탄 섬, 준페이와 칸타 형제는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좋아하는 아버지 타츠오의 영향을 받아 기차놀이를 즐기면서 은하철도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걸 상상해요.
그해 8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곧 러시아 사람들이 시코탄 섬에 들이닥칩니다.
마을이 어수선한 가운데 아이들은 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학교를 다니고, 준페이와 칸타는 러시아 장군의 딸 타냐와 우정을 쌓게 됩니다.
하지만 마을 방위대장인 타츠오가 체포되고, 얼마 후 주민들도 섬 바깥의 수용소로 끌려가죠.
고된 수용소 생활 중에 준페이와 칸타는 그리운 아버지를 찾아나서기로 합니다.
애니메이션 ‘은하철도의 꿈’은 미야자와 겐지의 유명한 동화 ‘은하철도의 밤’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7, 80년대생이라면 다 아는 TV만화 ‘은하철도 999’도 이 동화가 원작이죠.
대학시절 때, 원작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번역해가면서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주인공 형제의 이름은 동화의 지오반니와 캄파넬라에서 빌려왔고, 동화 속 아름다운 대사들은 주인공 형제의 대사를 통해 내내 등장합니다.
전후의 피폐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우울보다는 동심의 순수로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비참한 생활 가운데서도 두 형제가 거듭 꿈꾸는 은하철도가 유영하는 별빛 가득한 하늘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러시아인에게 밀려 멀쩡한 집에서 쫓겨나 곳간에서 사는 신세가 되고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도망치다가 일가족이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이 마을에서 벌어지는데도, 준페이와 칸타는 제 집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벽안의 소녀와 감동적인 추억을 만드는 순진한 설정이 붙을 수 있는 건,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시기적절하게 이용한 덕분일 것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시대적 배경을 알려줍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배경이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패한 직후 러시아와 쿠릴열도 분쟁을 벌이던 시기라는 걸 감추지 않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시대를 힘들게 지나온 평범한 일본인들의 생생한 경험담으로 보면 충분히 감동적일 테지만,
동화의 유들유들한 문장과 환상적인 이미지에 억지로 가린 역사의 아픈 속살을 대하는 방식은 보기 불편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은하철도의 꿈'은 정통 셀애니메이션 제작 기법으로 2D 애니메이션 고유의 따뜻한 감성과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아내며 다양한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초청을 받았습니다.
2014년 시카고 국제 어린이 영화제에서 최고 애니메이션 부문 어린이 심사위원상과 성인 심사위원상 수상을 시작으로
판타지아 영화제 사토시 콘상과 관객상 수상,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사랑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상을, 2015년 일본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최고 애니메이션 영화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은하철도의 꿈'은 수상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화제 초청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았어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PiFan)에서 2014년 공식 초청을 받으며 국내에 알려졌고,
2014년 뉴욕 어린이 영화 페스티벌, 슈투트가르트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경쟁 부분, 도쿄 어린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습니다.
그리고 즐린 어린이 청소년 국제 영화제,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 멜버른 국제 영화제, 판토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BFI 런던 영화제, LA EigaFest 등등 많은 영화제에 초청 받아 공식상영 했으며,
사할린 국제 영화제에서는 폐막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러시아에게 일본이 점령당하는 장면은 마치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당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눈이 호강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자기 나라 피해 당하고 자국민이 고통 받은 것만 강조하고 가해사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입니다.
부디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작품 ‘은하철도의 꿈’ 너머의 진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