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님의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입니다.
표지도, 제목도 참 독특하죠?
요즘 판타지, SF 소설이 눈에 많이 띄는데,
정세랑 작가님은 요즘 주목받는 SF 작가님 중 한 분입니다.
정세랑 작가님의 책 ‘옥상에서 만나요’와 ‘지구에서 한아뿐’을 재밌게 읽었어요.
그래서 이 책 또한 기대를 안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자꾸만 사라지는 손가락을 찾아 시간 여행을 하는 커플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사라진 연인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게 되어 동료와 고향을 떠나는 여자 ‘11분의 1’
거대한 지렁이가 인류 문명을 뒤짚어엎는 이야기 ‘리셋’
지구를 본떠 만든 모조 지구에서 일어나는 혁명 ‘모조 지구 혁명기’
기억력이 떨어지는 환자들을 위해 만든 약으로 인해
일어나는 이야기 ‘리틀 베이비블루 필’
특수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갇힌 수용소를 그린 이야기 ‘목소리를 드릴게요’
대멸종 이후 살아남은 인류가 과거의 인류에게 배운 것들 ‘7교시’
옥탑방에 사는 양궁 선수가 좀비들을 피해
참치캔으로 연명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여덟 편의 소설 모두 흥미진진하고 독특한 내용의 소설들이었어요.
혜정 씨, 보고 싶을 거예요. 저는 원래 사람을 안 좋아하는데, 열한 명 중의 한 명 정도만 좋아하는데,
혜정 씨는 그 한 명 쪽이에요. 혜정 씨를 좋아해요. 좋아했어요.
함께 점심을 먹을 때가 하루 중 제일 나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말해도 됩니다. 천체투영관에서 태양계 파트를 틀어주실 때,
목성과 목성의 위성들을 설명하실 때 말해도 됩니다. 저기에 친구가 산다고. 갈릴레이의 위성 중 하나에
친구가 산다고요.
우리가 다시 만나 점심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1분의 1’ p.40]
매일 말 그대로 날개 아래에서 잠들고, 꿈결에도 지구가 그립지 않다.
천사는 날개가 없을 때부터 천사였고, 천사가 내게 주는 안도감은 우주를 샅샅이 뒤져도
다른 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종류이리라 확신한다. 고용 계약은 파트너 형태로 갱신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천사를 위해서.
행복하다고 게을러지진 않았고 열심히 브로슈어를 발송하고 있다. 모조 지구의 발사대에서
온 우주를 향해 광고가 날아간다. 달콤한 색깔의 캡슐에 담겨, 암흑물질을 뚫고 끊임없이 날아가는
브로슈어가 언젠가 당신에게 닿기를.
모조 지구에 천사를 만나러 오세요.
['모조 지구 혁명기‘ p.122]
"우리는 지금 소풍을 왔어요. 밤에 혼자 깨서 무서우실 때
이 소풍을 떠올리시면 좋겠어요. 소풍 생각을 하시며 다시 잠드시면 좋겠어요.
이 날씨를, 이 나무 그늘을, 우리 표정을, 같이 부른 노래를 자꾸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리틀 베이비블루 필‘ p.130]
연선을 만나러 갈 것이다. 찾아가면 그 알 수 없는 얼굴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겠지.
수술대는 추웠고, 의사는 어쩌면 의사가 아니라 정부가 보낸 사람이라
수술을 하는 척 승균을 죽일 수도 있겠지만, 승균은 미소 지었다. 마취약이 들어올 때,
의사가 숫자를 거꾸로 세라고 했는데 승균은 전혀 엉뚱한 말을 남겼다.
하필이면 사랑이 일목 대상인 일목인처럼.
물거품이 될 각오가 선 인어처럼.
"목소리를 드릴게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p.215]
풍요로운 세계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곧 정윤의 세계가 끝날 참이었다.
정윤은 해가 지는 것을, 오래가는 LED 전구들 덕에 아직 무사한 가로등이 켜지는 것을
보았다. 끝이라 생각하니, 삭막한 지방 도시의 원룸촌도 아름다워 보였다.
이런 풍경이었구나, 나의 세계는. 감성이라 할 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어딘가가
찡해져왔다. 완벽한 풍경이었다. 하루를 더 살아남는다 해도,
그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다시는 내다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완결성이
사람에겐 필요한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메달이 필요하듯이.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p.250]
다 재미있는 소설이었지만,
저는 ‘11분의 1’과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정세랑 작가님은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기발한 생각이 있더라도 그것을 이렇게 재치 넘치고 노련하게 종이 위로 옮긴다는 것은,
작가님에게 천재적 능력이 있기 때문이겠죠.
착한 사람들이 상처 입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정세랑 작가님의 선한 의지를 담은 소설들이라
읽는 동안 저도 잠시나마 행복했습니다.
정세랑 작가님의 개성 넘치는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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