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님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입니다.
2015년에 나온 소설이죠.
저는 표지가 이쁜, 출간 5주년과 영상화를 기념해 제작된 ‘리커버 특별판’으로 샀어요.
어느 고등학교에서 장난감 칼과 총으로 퇴마를 하는 특별한 능력자 보건교사 안은영과
할아버지의 학교에서 한문교사로 일하는 한문 선생 인표의 이야기.
학교에 나타나서 질서를 어지럽히고 문제를 만드는 온갖 원인들을 해결하는
안은영만큼이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한문선생.
그와 친해진 안은영이 인표에게 원하는 건,
바로 그가 은영의 에너지 충전기이기 때문이죠.
두 사람은 손은 잡고 걷지만 연인은 아니었어요.
은영에게 인표는 손을 잡고 충전하는 일종의 배터리인 것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학교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점점 친해지고
마침내 연인이 되어
함께 하게 되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작품.
판타지 소설을 무척 좋아해서, ‘보건교사 안은영’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해가 갈수록 더 느끼는 점이지만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고르는 것 같다.
사명 같은 단어를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수긍하고 받아들였다기보단
수월한 인생을 사는 걸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게 맞겠다. 병원에서 있을 때는 힘든 파트만 다녀서
지금보다도 더 너덜너덜했다. 몇 년쯤 하고 나니 새벽의 병원 복도에서 기나긴 싸움을
하는 게 벅찼다. 그래서 대학 때 따놓은 보건교사 자격증을 활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호러와 에로 중에 고르라면, 단연 에로다.
[p.21]
"스무 살 때쯤 주지 스님에게 걸린 적이 한 번 있어요. 제가 사리탑, 사람들이
쌓아 놓은 돌무지까지 열심히 건드리고 다니고 있는데
뒤에서 슬쩍 '얻어 가시면 좋은 데에 쓰셔야 합니다.' 하시는 거예요."
[p.56]
인표는 내내 뜨뜻미지근했다. 은영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지형은 언젠가 인생이 그토록 럭키한 것만은 아니란 걸 깨닫기만 하면
특유의 오만함을 버릴 수 있을 것이고, 민우야 워낙 성정이 좋은 아이니 지금보다
차분해지기면 하면 멀쩡한 어른이 될 것이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올 미래인데 조급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p.76]
- 나쁜 일들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곳이야.
"나쁜 일들은 언제나 생겨."
너한테도 생겼잖아. 은영은 강선의 안타까워하는 얼굴을 최대한 차분하게 마주 보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웃는 표정이 어릴 때와 다르지 않았다.
- 칙칙해지지 마, 무슨 일이 생겨도.
[p.198]
두 사람은 몇 년 새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되어 있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며
길게 말하지 않아도 쉽게 좋은 호흡을 이끌어 낼 수 있었으나 연인은 아니었다.
매주 손을 잡고 걸어도 연인은 아니었다. 은영은 살아 내는 일이 버거워서 먼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며 모든 상황이 임시적이라는 걸 늘 암시했다. 여기엔 잠시 있는
거예요, 라고 항상 내비치는 여자를 향해 감정적인 경계선을 넘기에는 인표가 너무 현명했다.
[p.244]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인표가 은영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크게 말하지 않았으므로
잘못 들은 걸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인표가 아니라 은영 스스로가
말한 것 같기도 했다. 거짓말이어서,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p.271]
몸이 불편한 교사 홍인표를 지켜주고,
퇴마사인 안은영 교사의 무기를 충전해주기도 하는
거대하고 든든한 에너지가
저에게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책 읽으면서 안은영이 너무 부러웠어요.
올 한해는 느닷없는 바이러스 탓에 모두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도... 올 한해 정말 힘든 사건이 많이 일어나 너무 지친 날이 많았어요.
오염된 세계에 도망치지 않고 맞서는
용감한 안은영처럼 살고 싶습니다.
정세랑 작가님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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