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님의 장편소설 '7년의 밤'입니다.
이젠 제목만 봐도 몸이 저절로 으슬으슬 소름이 돋는 어마무시한 소설...ㅠ.ㅠ
저는.. 처음 이 책이 사실 이런 분위기인 줄 모르고, 제목만 보고는
'7년의 밤? 말랑말랑한 7년간의 로맨스로구나' 하고 충동적으로 골랐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며칠간 불면에 시달리면서까지 저한테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소설.
역시... 사람이나 책이나 얼굴만 보고 판단하면 안됨...ㅠ.ㅠ
하지만, 이 소설을 만난 것을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 일명 '세령호의 재앙'이라 불리는 사건에서 살아남은 열두 살 소년 서원.
세상은 그에게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가면을 씌우고, 친척집을 떠돌다 결국 모두에게 버려진 서원은
세령마을에서 한집에서 같이 지냈던 아저씨 승환을 다시 만나 함께 살기로 합니다.
세령호의 재앙으로부터 7년이 지난 후, 세간의 눈을 피해 살던 승환과 서원은
야간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청년들을 구조하게 되고, 이 일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서원은
누군가로부터 한 편의 소설을 배달 받게 됩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누군가에게 목 졸려 죽은 소녀를 중심으로 세령마을에서 일어났던 그날 밤의 사건, 서원에게 전해진 소설 '세령호'는
승환이 그 사건에 대해 쓴 것이죠.
'세령호'라는 소설은 7년 전 세령호의 재앙을 세밀하게 기록해 사건의 뒷편에 숨어있는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오랜 기간 호수 아래에 잠들어있던 진실은 7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사실과 진실 사이를 휘청이며 어두운 7년의 밤의 시간을 걸어온 그들은 그 시간을 딛고 서서히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고양이는 천둥이 치기 전에 뇌에 자극을 느낀다고 한다. 인간의 뇌 변연계에도
비슷한 감각이 하나 있다. 재앙의 전조를 감지하면 작동되는 '불안'이라는 이름의 시계.
자리에 누운 후로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째깍대는 초침소리를 들으며 기억 속으로 뒷걸음질 쳤다.
7년 전 그날, 아저씨와 경찰서에서 헤어진 후로.
[p.18]
놀라면 허둥대야 정상이다. 모욕당하면 분노하는 게 건강한 반응이다.
호감을 받으면 돌려주는 게 인간적 도리다.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산다.
아저씨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문장에서 '그렇게'를 떼어내라고 대꾸한다. [p.28]
검은 하늘에 적황색 보름달이 떠 있었다. 호수비탈은 석양녘 들판처럼 붉었다. 가시박덩굴
밑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도 붉었다. 떠도는 대기마저 붉은 밤 속으로, 그는 느릿느릿 걸어갔다.
들리는 것이라곤 수문의 물소리와 자기 발소리뿐인 고요한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p.189]
다시는 당황하지 않을 줄 알았다. 당황할 일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전 방위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얼빠진 어린애처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거리로 나가 아무나 붙들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어째야 하느냐고.
저 목소리를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p.287]
나는 시간의 등 뒤에 서 있는 열두 살 소년을 생각했다. 수수벌판 끝에 서서
산 너머 등대불빛을 바라보며 소년은 무엇을 꿈꿨을끼. 안개에 묻어온 바다냄새를
맡으며 무얼 상상했을까. 무엇이 소년의 영혼을 수수벌판 우물에 가두었을까.
아버지의 아버지였을까, 아버지 말대로 아버지 자신이었을까.
아버지는 이제 자유로워졌을까.
[p.480]
쉴새없이 심장을 가격하는, 상상력만으로 몸살이 나는 소설.
2011년, 이 소설이 나오자마자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곧 나온다죠.
저는 무서워서 못 볼 것 같아요.. 부러지고 피가 날 게 뻔한 영화라..ㅠ.ㅠ
현수와 영제.
살인마는 과연 누구인지, 진짜 악한 사람은 누구인지 소설은 마지막까지 독자에게 묻습니다.
덧붙여, 정유정 작가님에게도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사건을 옆에서 보고 그 자리에서 쓰라고 해도 정유정 작가님의 섬세한 묘사와 탄탄한 필력은 못 따라갈 듯...^^*
유년기의 판타지와 세상의 추악한 뒷모습까지 낱낱이 파헤치는 소설 '7년의 밤'
무서우면서도 너무나 슬픈 소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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