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여자

사는 게 뭐라고

하얀 종이 2018. 3. 5. 15:31



사노 요코 작가님의 수필 '사는 게 뭐라고'입니다.


출간된 지도 한참 지나고 유명한 작가님이신데... 왠지 손이 닿질 않던 책.


사는 건 모름지기 그 무엇보다 고귀하고 묵직해야 한다는 생각을 제가 평소에 하고 있어서였을까요. ^^//



그러던 어느 날, 제게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는 것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셨기에 오히려 더 이런 글을 쓰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노 요코 작가님이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나서


쓰셨던 수필...


통쾌하고 재치 넘치는 할머니의 책...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읽었어요. ^^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아침밥을 먹을지 스스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p.14]

 













 

 

나는 매일 아침 몹시 겸허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변한다. 작고 여린 나뭇잎을 기특해하다 보면 이윽고

우주까지도 기특하게 여겨졌다.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무까지 달려가지는 않지만, 제아무리

마음이 언짢을 때라도 창밖을 보노라면 상쾌한 기분이 얼굴을 쏙 내민다.

[p.78]

 

 

 

 












한국 드라마의 남자는 일본 남자라면 부끄러워 할 만한 일을

 태연하고 당당하게 해치운다. 장미꽃으로 하트를 그리고,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서도 이름을 부르며, 눈이 먼 여자를 위해

목숨을 끊어 자신의 각막을 이식한다. 문득 제정신으로 돌아와 그런 게 바보 같다고 여기는 건 이성이다. 이성은

모순을 허락하지 않지만 감성은 모순의 마그마다. 무엇이든 들어오라. 어서 들어오라.  [p.135]

 

 













 

 

나는 아줌마다. 아줌마는 자각이 없다. 미처 다 쓰지 못한 감정이 있던 자리가 어느새 메말라버렸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서야 그 빈자리에 감정이 콸콸 쏟아져 들어왔다. 한국 드라마를 몰랐다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인생이 다 그런 거라고 중얼거리면서. 하지만 브라운관 속 새빨간 거짓말에

이렇게 마음이 충족될 줄 몰랐다. 속아도 남는 장사다. [p.137]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p.187]

 

 

 
















인간은 신기하다. 인생이 갑자기 알차게 변했다.

매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p.243]

 

 

 
















사람은 태평스러운 존재다. 그간 실수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는 나조차도 '내 인생은 썩 괜찮았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기 편할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로 나뿐일까?

[p.245]



















뭔가 화려하거나 벅차도록 감정이 느껴지진 않지만 담백하고 솔직한 글이 때론


감동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에 푹 빠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일상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일본이 한국에게 잘못한 것은 맞지만 나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고 또 자신도 무척 고생스럽게 살아왔다는 이야기,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살아있을 때 맘껏 저지르자며 물적 충동구매를 덥석덥석 지르는 이야기...


메밀국수처럼 질리지 않는 담백한 문체가 맘에 들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그 얼마 남지 않은 귀한 시간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까요.


거창한 계획이 아니더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어딘가로 여행을 가는 것으로


우리는 삶은 더 행복하게 그릴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상에 자신의 아름다운 그림자를 툴툴 털어버리고 먼 길을 떠나신


사노 요코 작가님, 감사합니다. ^^



삶에 대한 작지만 큰 위로가 담긴 책 '사는 게 뭐라고'


잘 읽었습니다. ^^


'책읽는 여자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0) 2018.03.30
호텔 프린스  (0) 2018.03.14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0) 2018.02.24
바다는 잘 있습니다  (0) 2018.02.06
그대 눈동자에 건배  (0) 2018.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