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 사야카 작가님의 소설 '편의점 인간'입니다.
꽤 오랫동안 '예스24 마이리스트'에 저장되어 있던 책.
지난 달, 책을 사려고 여기저기 살펴보다 저 깊숙이 놓인 이 책이 문득 눈에 띄어서,
읽게 되었어요.
유명한 책인데... 왜 여태 마이리스트 한 구석에 짱 박아두기만 했을까...^^;;
서른여섯 살 '후루쿠라 게이코'라는 여성은 모태솔로에 대학 졸업 후 취직 한번 못 하고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계속 바뀌는 알바생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면서 여덟 번째 점장과 일하고 있는 게이코.
그녀는 매일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정해진 규칙대로 나열된 편의점 풍경들 그리고 "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 따위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자신의 정체성을 느낍니다.
하지만 세상이 정한 적당한 나이에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배우자와 아이를 가진 소위 '보통' 사람들의 수군거림에서
게이코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 그녀 앞에, 월세가 밀려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고 항상 남 탓만 하는 백수 '시라하'가 나타나죠.
그는 게이코에게 말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나를 숨겨달라고.
그렇게 그 두 사람은 기이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지문이 묻어 잊지 않도록 깨끗이 닦은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루의 시작. 세계가 눈을 뜨고, 세상의 모든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하는 시간. 그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어
돌고 있는 나. 나는 세계의 부품이 되어 이 '아침'이라는 시간 속에서 계속 회전하고 있다.
[p.13]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지금도 꿈틀거리고 있을 그 투명한 유리 상자를 생각한다. 가게는 청결한 수조 안에서
지금도 기계장치처럼 움직이고 있다. 그 광경을 상상하고 있으면
가게 안의 소리들이 고막 안쪽에 되살아나 안심하고 잠들 수 있다.
아침이 되면 또 나는 점원이 되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p.34]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 초등학교 시절의 그때처럼
조금 물러나서 나에게 등을 돌리고, 그래도 어딘가 호기심이 섞인 눈길만은 기분 나쁜 생물을 보듯 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 나는 이물질이 되었구나.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p.102]
"나를 세상으로부터 숨겨달라구요. 내 존재를 이용하여, 입으로는 얼마든지 퍼뜨리고 선전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나 자신은 계속 여기에 숨어 있고 싶습니다. 생판 남한테 간섭 받는 건 이제 진저리가 나요." [p.132]
나를 아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나를 숨겨줘요. 나는 아무한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다들 태연히
내 인생에 간섭해. 나는 그저 조용히 숨을 쉬고 싶을 뿐이야.
[p.141]
나에게는 편의점의 '목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편의점이 되고 싶어
하는 형태, 가게에 필요한 것, 그런 것들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 온다. 내가 아니라 편의점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이 내리는 계시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었다.
[p.191]
일반적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세상의 부품, 이라곤 할 수 없지만 자신을 작은 편의점의 부품이라고 느끼며 사는 게이코를
우리는 감히 '비정상'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세상은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와 때에 맞춰
자라야 하고, 배워야 하고,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직업을 갖고, 연애와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하며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규격에 맞는 세상의 부품이 되어 사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그게 '정상'이라고.
하지만 그외 테두리 부근에서 사는 사람들을 그들은 어떤 자격으로 '비정상'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평범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소설 속 게이코에게,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울감이 그득한 소설인데.. 뭔가 묘한 매력을 가진 소설이에요. ^^
작가님의 일기장을 들춰본 것 같은 정말 솔직한 소설 '편의점 인간'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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