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입니다.
2015년부터 매해 구입하는 저렴하고 알찬 책~
노련한 중견작가님 소설도 좋지만,
신선한 신인작가님들의 소설을 읽는 것도 저에겐 분명한 배움이 담긴 경험입니다. ^^
박민정 작가님 작품, 친구J로 인해 미국 여행중 한 축제에서 벌어진 일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간 자신의 영상을 보며, 한류 팬으로서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 세실과 이야기하는 소설 '세실, 주희'
임성순 작가님 작품, 비자금의 한 형태였던 미술계에 몸담은 한 남자의 이야기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임현 작가님 작품, 버스사고로 죽은 아내와 사고를 피한 운전자의 해고에 대해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 '그들의 이해관계'
정영수 작가님 작품, 아직 살아있는 이모 그리고 이모가 유산을 남기려고 하는
조카네 부부의 이야기 '더 인간적인 말'
김세희 작가님 작품, 블로그 후기 광고대행사에서 '채털리부인'이라는 가명으로
일하는 여자의 이야기 '가만한 나날'
최정나 작가님 작품,
어두운 거리의 식당에 들어선 여자와 엄마와 동생의 이야기 '한밤의 손님들'
박상영 작가님 작품,
퀴어 영화를 만드는 남자의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모두 잘 읽었습니다. ^^
주희는 세실을 속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실, 당신의 할머니와 여기서 말하는 피해자 할머니들은 조금 달라요... 세실의 할머니는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면서요...
그런 말을 세실에게는 결코 할 수 없었고 주희는 조금 참담해졌다.
세실 상, 다른 길로 갈까요? 주희는 세실에게 진지하게 물었고,
세실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냥 가요.
[박민정 ‘세실, 주희’ p.36]
"괜찮아요. 아픈 것도 모를 겁니다."
경고. 결코 겁에 질리지 말 것.
그리고 나는 노신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것이 쇼든 현실이든 답은 늘 같았다. 모든 건 결국 돈의 문제였으니까.
어둠이 정수리 위로 떨어지기 직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걸 라이선스 할 수 있을까요?"
칠흑 같은 침묵이 파르르 떨렸다.
[임성순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p.83]
전체적으로 보자면 일종의 절대량 같은 게 있어서 그게 늘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 확률상으로는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다만 엄청나게 큰 분모와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분자 값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항상 누군가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사고를 당할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런데
왜?
왜 하필 그게 해주였나.
[임현 ‘그들의 이해관계’ p.109]
자, 이제 무엇을 먹을 거죠?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확인하려고 두리번거리다가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어떤 음식에 관해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음식이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을뿐더러 말이 되어 나오지도 않았다.
어딘가에서 낄낄낄낄,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치에서 튀어나온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끝에서 검은 구멍이
이를 드러냈다. 처음에 그것은 웃는 소리 같았는데 비명 같기도 했다.
[최정나 ‘한밤의 손님들’ p.237]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난 그때 그 순간으로 말미암아 한 시절이, 인생의 아주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끝나버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원한다면 뭐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 세상의 꽤 많은 것들이 이미 다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시절, 다섯 개의 색만으로 무슨 그림이든 그릴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p.305]
그렇게 우리는 술에 취하면 더욱 빠른 속도로 취해야 한다는 주사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다시금 가까워졌다. 이번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 성적 욕망이 걷힌, 맑고 투명한 관계로 남아 인생의
가장 고장난 시절을 함께하는 중이다. 그리고 요즘도 누구보다도 넓고 단단한 그의 등을 보며
나는 그 시절의 그와, 나아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나 자신과 화해하기로 결심했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p.314]
전부 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세실, 주희'와 '그들의 이해관계'를 인상깊게 읽었어요.
'세실, 주희'는 일본학을 전공한 한국인으로서 한번쯤 반드시 다루고 싶은 소재의 소설이었고,
'그들의 이해관계'는 큰 사고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 혹은 그의 가족이라면
공감을 얻을만한 소설이었어요.
판타지, 공포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접할 수 있는 책이어서 좋았습니다.
다양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거대한 미술관을 천천히 걷는 기분...
하마터면 출구를 잃을 뻔할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들이었습니다.
어쩌면 같은 길을 저보다 한두 걸음 앞서 걷고 있는 작가님들.
저도 뒤따라 열심히 걸어가겠습니다.
신선하고 귀한 소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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