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여자

별걸 다 기억하는

하얀 종이 2019. 10. 8. 16:32




한지은 작가님의 수필 '별걸 다 기억하는'입니다.



7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어린이,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90년대에 어른이 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라는데...


80년대 중반에 태어나 90년대에 어린이, 청소년 시기를 지난 저도


지극히 공감할 내용이었어요. ^^





친엄마, 못찾겠다 꾀꼬리, 말 아저씨,


이름점, 분신사바, 공중전화, X세대...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뭉클한,


우리가 어린이였을 때의 이야기들입니다.


  

















우리들의 골목 놀이터. 그곳엔 "시끄럽다", "놀지 마라" 하고 으름장을 놓는

무서운 어른들도 계셨지만, 우리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켜주시던 수많은 진짜 어른들도 함께 살고 있었다.

[p.34]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는 잔소리나 꾸중 대신 자전거에 나를 매단 채

골목 이곳저곳을 탐험하듯 돌아다니셨다. 이제는 길을 잃어버려도 잘 찾아오란 뜻이었을까?

나는 아빠의 등에 딱 붙어서 동네 풍경을, 골목 구석구석을 눈에 차곡차곡 담았다.

[p.87]

 

 

 

 













나의 꼬마 친구들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짱구박사와 막냇삼촌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거리던 라일락 나무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삼거리 우물을 돌아 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할 때 거울 안으로 삼순이가 보였다. 우리 트럭을 쫓아 따라오던

삼순이를 보며 나는 다시 목 놓아 울었다.

엄마 품에 안겨 온몸을 떨며 울고 있을 때 내 머리 위로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속이 시원하다며 이삿짐을 싸던 내내 행복해하던 엄마도 소리 없이 울고 계셨다.  [p.119]

 

 

 

 













 

두근두근,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져 나올 듯 세차게 뛰었다. 응원석에서 외치는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는 진공 상태에 접어든 순간,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에 다리가 먼저 뛰쳐나갔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내 의식보다 먼저 나아가는 다리를 따라 달리다 보니 까마득히 멀리 보였던

결승선 테이프가 바로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제야 서서히 진공 상태에서

벗어나 주위 소리가 들리고 미친 듯 뛰던 심장 소리가 잦아들었다.

결승선에 도착한 순서대로 도장을 찍어주시던 선생님이 내 손등에도 보랏빛 도장을 찍어주셨다. 1등.

[p.168]

 

 

 

 













삼촌은 종이학을 들고 나간 날,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또 다음 날도 삼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삼촌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고 했지만 나는 알았다. 삼촌이 접은 천 개의

종이학은 학이 되어 날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종이학을 접지 않았다. 종이학을 믿지 않았다.

[p.214]

 

 

 

 












 

그와의 확률은 55%. 겨우 55%의 확률로 그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누군가 한 명 개명을 하지 않는 한 우리가 이루어질 확률은 없었다. 70%만 넘었어도 물리 공부를 좀 해서

선생님 눈에 들었을 텐데 아쉽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오르지 못한 내 물리 점수.   [p.238]

 

 

 















수화기에 매달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 시시비비를 가리며

언성을 높이던 사람, 받지 않는 전화를 탓하며 유리문에 주먹을 날리던 사람, 술에 취해 공중전화 부스를

안방마냥 이용하던 사람, 전화번호부 책에서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골라 폰팅을 하던 사람.

수많은 사람들과 사연, 가끔은 술주정도 받아야 했던 공중전화 부스.

이 작은 공간에 사연 하나 없다면 당신은 진짜 '옛날 사람'도 아니다.  [p.270]



















어쩌면, 어린 시절에 동네를 돌아다니다 함께 고무줄놀이나 숨바꼭질을 했던 언니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착각할 정도로 정겨운 이야기를 하시는 한지은 작가님. ^^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맞아, 이랬었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진짜 공감 되는 내용이 그득한 책. ^^

  

  

재미있게 읽다가도,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져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가족, 친구, 이웃들... 그 시절이 정겹고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되는 건


우리가 세상을 알기에는 너무나 작았고 또 작은 우리들 곁에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세상을 알고, 사람을 알아가면서...


그 시절이 참 그리워집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준 지난 시간에 대한 보답이라 믿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

 

 

 

 

한지은 작가님의 따스한 수필 '별걸 다 기억하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책읽는 여자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구의 사랑  (0) 2019.10.28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0) 2019.10.17
쓸 만한 인간  (0) 2019.09.30
대도시의 사랑법  (0) 2019.09.17
여행의 이유  (0) 2019.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