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님의 '라면을 끓이며'입니다.
절판된 책과 새로 쓰신 산문을 추리고 엮은 책이에요.
밥, 돈, 몸, 길, 글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선생님의 삶...
어쩌면 모든 글쟁이들의 삶이 이것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요.
모든 '먹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 모든 포유류는 어금니로 음식물을 으깨서 먹게 되어 있다.
지하철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짜장면을 먹는 걸인의 동작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냅킨을 두르고
거위간을 먹는 귀부인의 동작은 같다.
그래서 밥의 질감은 운명과도 같은 정서를 형성한다. [P.71]
글이란 아무리 세상 없이 잘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몇줄이라 하더라도
그 물적 바탕은 훈민정음 스물네 글자를 이리저리 꿰어맞추고 붙였다 떼였다 하는 것이다. [P.128]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P.139]
세 마리의 새가 날아갈 때, 이 세계의 관계망은 완성된다. 세 마리는 '너'와 '나'와 '그'를 이룬다.
세 마리는 각자의 일인칭을 거느리면서 삼인칭의 공간을 날아간다.
세 마리가 날아갈 때, 언어는 교묘해지고 복집해진다. 세 마리는 언어를 완성한다.
'나'의 언어가 향하는 방향에 따라서 '너'와 '그'는 바뀐다. [P.351]
슬픈 이야기, 아픈 이야기, 즐겁고 기쁜 이야기...
우리네 살아가는 삶이 곧 이야기고, 글이겠죠.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은 저 멀리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당신 손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삶은, 지금껏 글을 쓰시며 살아온 인생은, 고단했고 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고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밥벌이의 고단함을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알기에,
더욱더 열심히 살자는 메시지가 담긴 묵직하고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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