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 작가님의 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입니다.
작가님의 '대책없이 해피엔딩'이나 '모든 게 노래'같은 수필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장편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도무지 제 취향이 아니라서...
'아, 이 작가님은 소설보다는 수필인가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라는 제목의 강렬함에 읽게 된 김중혁 작가님의 소설집.
그래서 쉽게 판단하면 안된다고 하는가봐요. ^^*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포르노영화 감독과 여배우의 이야기 '상황과 비율'
실종된 여가수와 그녀를 찾으러 가는 남자팬의 이야기 '빅 포켓'
외로움을 술로 달래는 남자와 그의 전여친이, 남자가 알콜중독자모임에서 만난 '피죤'씨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 '가짜 팔로 하는 포옹'
고향을 등진 지 5년 된 남자가 지진이 난 고향을 다시 찾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뱀들이 있어'
큐레이터와 화가의 명사분실증 '종이 위에 욕조'
그저 살아남기 위해 목적지도 없이 걷기만 하는 '보트가 가는 곳'
보험사기단 일을 하며 진짜 차에 몸을 던지는 남자 '힘과 가속도의 법칙'
일생을 시계 제작에 바친 남자 이야기 '요요'
모두 독특하고 특별한 연애소설입니다. ^^
"영화 속 상황이든 현실의 상황이든 다를 게 없습니다. 모든 상황엔 일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엔 의미가 있습니다." [p.22]
알지. 내가 다 죄인이지. 전부 내 잘못이지. 그런데 그거 알아?
아무런 애정 없이 그냥 한번 안아주기만 해도, 그냥 체온만 나눠줘도 그게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대. 나는 그때 네가 날 안아주길 바랐는데, 네 등만 봤다고.
등에는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고. [p.96]
그림은요, 순간을 낚아채진 못해요.
그렇죠.
사진이 부러울 때도 있어요.
찰나가 부러워요?
그림을 그리는 중에도 시간은 흐르니까요. 멈출 수 없어요.
그렇죠.
그림 속 여자들이 나한테 말을 걸었어요.
뭐라고요?
멈출 수 없어요. 아무것도.
[p.189]
꿈이나 미래 같은 단어들은 한입에 먹기엔 버거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숭아 같다. 일단 베어 물면 달콤한 즙이 새어나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덩어리에 압도당하고 만다. 달콤하던 즙은 점점 시큼한 맛으로 변하고,
복숭아는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p.223]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 쌓여 있는 말이 많아서 그걸
꺼내놓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못했던 말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하지 못한 말이 더 쌓이고 말았다. 높이 쌓아올린 책더미에서
밑바닥과 가운데 책을 꺼내기 힘들 듯 오래전 얘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 얘기들을
꺼내려면 한 줄로 쌓인 모든 얘기를 허물거나 위에 쌓인 이야기를 전부
걷어내야 한다.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남아 있을까.
그 이야기들을 꺼낼 만한 시간이 다시 올까.
[p.298]
김중혁 작가님은 작문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그중에서도 '비유'를 정말 잘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미래'와 '복숭아'를, '뱀'과 '지진'을 연결고리로 이어서 소설을 지으신 걸까요.
제가 보기엔 일반적인 연애소설 장르는 아닌 것 같은데... 작가님이 연애소설이라고 하시니까..ㅋㅋ
그러니까, 달콤한 류의 연애소설은 아니지만.. 뭐 어떻든 연애를 이야기하는 소설은 맞다는 거죠. ^^;
아무튼, 저는 몇년 전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에서 느꼈던 작가님에 대한 실망감을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읽고 나서 훌훌 털어내었습니다. ㅋㅋ
역시... 김중혁 작가님은... 소설가...*^^*
주말 내내 기분이 좀 우울했는데
이 책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
상대가 안아주길 바라는데 그가 나의 등만 바라보면서 안아주지 않는다면...
저처럼 소설로라도 스스로를 안아줍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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