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여자

28

하얀 종이 2016. 9. 27. 16:20




정유정 작가님의 장편소설 ‘28’입니다.

 

잔혹한 리얼리티 속에 숨겨진 구원의 상징과 생존을 향한 뜨거운 갈망이라는, 이 책의 광고 문구를 봤을 때는


정말이지 이 소설을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7년의 밤을 읽고  여운이 그대로 남아 며칠간 불면의 밤을 맞이한 저로서는...ㅠ.ㅠ

    

 

근데, 어쩌다가... 내게로 온 소설 ‘28’


... 이걸 어쩌지... 이걸 읽으면 또 잠 못 잘 게 분명한데...


그래!! 어쨌거나 이렇게 마주 앉은 것도 인연이다.. 한번 읽어나 보자...!!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조그만 심장을 부여잡고..

  

  

수도권 인근 도시인,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화양시. 인구 29만명의 화양시에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생합니다. 최초의 발병자는


개 번식사업을 하던 중년 남자. 신종플루에 걸렸던 이 남자는 병에 걸린 개에 물린 후 눈이 붉게 붓고 폐를 비롯한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입니다. 이 남자를 구하기 위해 출동한 119구조대원들을 중심으로 전염병이 퍼지고 빠른 속도로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


들까지 눈이 빨갛게 변하며 며칠 만에 돌연사합니다. 응급실의 간호사 수진과 소방대원 기준은 점차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하죠.



한편, 알래스카에서 개썰매 레이스 아이디타로드에 한국인 최초로 참여했던 재형은 눈 폭풍 속에서 가족처럼 기르던 개들을 굶주린


야생 늑대 떼에게 잃습니다. 그 상처를 안고 한국의 화양으로 돌아와 산속에서 유기견 구조센터 드림랜드를 운영하는 재형. 그러나


재형에게 기르던 개 쿠키를 빼앗긴 동해의 제보로, 재형이 알래스카 개썰매 레이스에서 개들을 몰살시킨 파렴치한이라는 기사가 기자 윤주에


 의해 보도되면서 드림랜드는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합니다.


빨간 눈괴질의 발병지에서 겨우 도망쳐 나왔던 늑대개, 링고는 화양을 떠돌다 재형의 드림랜드 근처에서 암캐 스타를 만납니다.


평생 하나의 짝만 두는 늑대의 후손인 링고는 스타가 운명의 짝임을 감지하고 멋진 사랑을 나눕니다.

 

전염병은 급속도로 퍼져, 수진이 근무하는 병원에 환자들이 들이닥치고 병원 직원들조차 죽어나갑니다. 119구조대원 기준은 자신도


빨간 눈 괴질의 보균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아내와 딸을 화양시 밖으로 내보내려 하지만, 화양시에서


발발한 전염병이 서울을 포함한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게 국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화양시를 봉쇄합니다.


결국 화양은 점차 이성을 잃은 끔찍한 지옥이 되어가죠.

 

 

 

    














 

 

나는 때로 인간 없는 세상을 꿈꾼다. 자연의 법칙이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곳, 모든 생명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세계, 꿈의 나라를. 만약 세상 어딘가에 그런 곳이 있다면 나는 결코 거기에 가지 않을 것이다.” [p.28]

 

    













 

스타는 종소리 쪽을 돌아봤다. 고민하는 기색이었으나 이내 몸을 돌리고 담장을 따라 달려갔다. 링고는 뒤따라 달려가 담장 끝에서 스타와 얼굴을 맞대고 섰다. 이번에는 스타가 철망 사이로 코를 내밀었다. 링고는 혀를 내밀어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코와 입 주변을 핥았다. 강아지 시절 말고는 해본 적이 없는 아첨이요, 아양이었다. 스타, 나랑 놀자. [p.103]

 

 

  
















  

 

다른 한편에선 굴삭기가 구덩이를 덮기 시작했다. 개들은 떨어져 내리는 흙과 쓰레기 더미 속에서 울부짖었다.

그 울음이 윤주에겐 사람의 말로 들렸다.

 

살려주세요. [p.241]

 

 

  











  

 

 

누군가 살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해주었으면 했다. 누군가가 잘하고 있다해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누군가가 윤주

였으면, 싶었다. 그러면 위안이 될 것 같았다. [p.326]

 

 

 

    














 

누구한텐 당연한 일이 누구한텐 목표가 되기도 해요.” [p.449]

 

 

 

 

    













 

이 소설은, 한때 대한민국을 공황상태로 만들었던 조류독감이나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을 떠올리게 합니다.


동물이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


누구한텐 당연한 일이 누구한텐 목표가 되기도 한다는 말인즉슨,


그저 아침에 일어나 밥먹고, 공부하고, 일하고, 가족들과 잠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라는 꿈이라는 거겠죠.


 

비상상황에서 우리 인간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탄탄한 필력으로 묘사해주신 정유정 작가님의 소설 ‘28’

 

며칠간의 밤을 불면으로 지새우긴 했지만... 정말 대단한 소설이란 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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